나의 반상 일기(3월 5일)
- 5년간의 승부 - 약수터와 경내가 낙 - 환경이 편안했다
오후 3시 25분.
어느새 3월. 그러고도 5일.
이렇듯 시간이 빠른데, 왜 88년 그 때는 시간이 더디게 지나갔을까.
같은 일을 하더라도 시간을 음미하면서 했던 때문일까. 굳이 나이 탓 아니한다면 말이다.
건조한 생활 중에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연대 뒷산 안산에 올라가 약수를 떠오는 것이었다.
가을부터 약수를 아침 저녁 두 번 패밀리 쥬스병 가득히 떠 왔다.
천천히 걸으면서.
약수터는 많았다. 과연 좋은 물인지 여부는 모르지만 수질검사는 하는 곳.
눈이 와도 비가 와도 약수터 가는 길은 언제나 다름이 없었다. 오솔길.
계절 바뀌는 거 즐기는 맛도 썩 좋았다. 바람이 강해지는 것. 나뭇잎 색상 변하는 것. 공기가 점차 차가워지는 것. 내 입는 옷 무거워지는 것.
사실 난 당시도 대단히 게을렀다. 단순한 공부에 맛이 단단히 든 것과는 별개로.
겨울에는 이리 했다.
아침에 일어나 지난 밤 남은 약수물 끓인다.
크리넥스 치킨 타올에 적신다. 그것으로 세수한다. 그것으로 발도 닦는다. 발가락 사이.
그리곤 약수터로 올라간다.
사실 그 집은 좀 추웠다. 방은 따뜻했는데 산 밑이라 밖에 나가서 세수하는 것은 겨울에 곤욕이었다.
아마도 내 건조한 생활의 낙이 있다면 - 당시는 모든 것이 낙이라고 여겨졌지만 - 약수터 다녀오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저녁 먹고 한 번. 아침 먹기 전에 한 번.
어느 것이 먼저였을까.
술을 아니 먹는 것과 규칙적인 생활.
금주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용수백이를 마신 적도 있었다. 청주 담글 때 노랗게 떠오르는 물을 용수 박아서 떠내는 그 술. 독하지만 정말 맛있는 술이다. 요즘은 어디 가면 맛볼 수 있을까.
내 술 좋아하는 줄 아는 주인집에서 술 생기면 나를 불렀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마셔도 곧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 날 할 일을 미루는 일은 없었다.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앉아있는 시간이 기분 맑게 해주는데 왜 아니 앉으랴.
마치 지난 4년간 술 마신 것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이 자리에 앉고, 시간이 되면 일어서서 산책을 했다.
짐작컨대 아마 다음과 같은 것이 나를 새로운 생활에 적응시키고 또 기껍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건 바둑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나의 생활을 정의定義하고 있던 가장 큰 울타리를 열어서 밖으로 나간 기분.
그랬을 것이다. 부족한 것이 귀한 법. 그 언제나 그 어디서나.
나는 바둑을 두면서 다른 생활이 부족했던 것이다. 규율 잡힌 생활. 바로 그것이 부족했던 것이다. 83년 겨울부터 시작된 나의 초기 프로 시절은 술과 불규칙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무언가 찾으려고 했지만 노력은 부족했던 생활. 비록 그 중간에 논문 쓰느라고 한 시절 집중했지만, 그러나 그 집중은 단순한 것은 아니었다. 웬일인지 복잡했다. 연애도 있어서 그랬을까. 집중 하겠다고 일부러 술을 마신 적도 드물지 않았기에 그랬을까. 술 마시면 때로 가지를 쳐서 줄기를 쉽게 붙잡을 수 있는 상상력이 생기는 환상에 젖기도 하는 법이니까.
아, 다른 기사들도 불규칙하고 술을 많이 마셨다고 미루어 짐작은 마시라. 그런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내 알기로 규칙적인 생활이 주어진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젊은 후배들이야 말할 것도 없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대해서 내 들은 바 있지만, 글쎄다. 1980년대 후반은 한국 바둑의 황금기에 진입하던 때라서 다르고도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88년 늦여름 초가을부터 시작된 생활은 그렇게 단조로울 수가 없었다. 그런 생활은 내 그 때까지 처음 해보는 것이었다. 대학 들어가기 전 1977년 5월 17일 이후 방에서 7월 31일까지 나오지 않고 지내던 그 때 이후. 그러나 대학 입학을 위해서 하던 공부는 마음이 급한 탓에 대단히 신경질적인 생활을 했었다. 가족들이 말도 못 붙일 정도였다.
나는 20대 때 대단히 신경질적인 사람이었다. 좋게 말하면 예민했지만, 칼집 밖을 나온 칼과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그러나 88년의 가을과 겨울은 마음이 넉넉했다. 조급한 마음은 사라지고, 사물을 대하는 것에 일종의 별미別味가 느껴졌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산 밑에 바로 옆에 절이 있어서 그랬을까. 당시는 사찰 경내가 아주 평온했다.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대웅전 - 90년대인가 불에 타서 다시 재건했다 -에서 산 아래를 바라보면 왼쪽으로 큰 방 - 건물이지만 - 이 하나 있는데, 奉元寺라고 현판이 걸려 있었다. 묘하다. 건물을 앞에서 바라만 봐도 편안한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높지 않은 맞배지붕에 정면에서 보면 좌우의 폭이 매우 넓은 독특한 건물이었다. 무형문화재인 범패梵唄 가르치고 배우는 소리가 가끔 들렸는데, 19세기 구한말舊韓末 김옥균이 개화승 이동인을 만난 자리가 그 방일까.
웬지 대조적인 그러나 대조적이지 않은 그림 하나.
4월 초파일이면 꿈처럼 연등이 떠다니는 골목길. 내려다보면 염염焰焰히 타오르는, 마당을 메운 연등의 행렬. 아마도 그 사월 초파일은 지금도 그 때와 다름이 없으리. 내 가장 화려하게 만난 4월 초파일의 밤. 奉元寺.
그랬을 것이다. 아침 저녁 경내를 둘러보는 맛은 생활을 단조롭게 꾸며주고, 생활은 사찰 경내를 마음에 한 번 더 담아두고 싶었을 것이다.
공부하는 장소는 매우 중요하다. 화장실과 시장과 마상馬上이 글읽기 좋다지만, 글쎄.
운이 좋았다. 우연히 공부하려고 마음 먹었을 때 내가 마침 바로 그 자리에 살고 있었던 것은 정말이지 운이 좋았다고 표현할 밖에 없다.
나는 요즘도 뭐 하나 잠깐이나마 공부할 필요를 느끼면 자리를 옮긴다. 절에 가기도 한다. 산책길을 하나 만들기도 한다. 집에서는 한계를 느낀다. 매우 게으르게 된다. 읽어도 가벼운 책만 읽게 된다.
하긴 이런 현상이야 누구나 다 갖는 거 아닐까. 굳이 내 얘기를 이리도 장황하게 늘어놓을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하나는 강조하고 싶다. 나에게. 무엇보다 나에게.
공부를 하려면 건조한 생활을 하라.
술 마시면서 한 달 공부하는 것보다 석 달 공부하는 것보다 술 끊고 단조롭게 1주일, 아니 사흘이라도 하는 것이 훨씬 성과가 좋다.
그래, 그렇게 하루 하루 지나면서, 날짜 지나는 것을 바라보면서, 낙엽이 물들고 낙엽이 지고, 겨울이 오면서 가을의 투명한 하늘이 습기 빠진 공기로 채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렇게 하루 하루 지내면서 나는 시간을 보냈다. 매우 단순한 꺼리만을 가지고. 몇 권의 교과서.
맑은 머리가 먼저 왔을까. 맑은 생활이 먼저 왔을까.
아마도 후자가 먼저겠다.
그런 어느 겨울 날. 눈이 많이 내린 날.
한국기원에서 전화가 왔다.
승단대회 기권 문제에 대해서.
나는 잊고 있었다. 승단대회에 대해서 미리 말해두지 않으면 내가 시합에 참가한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그래서 잊고 있었는데, 내가 승단대회를 두 번 불참하니까 전화가 온 것이었다. 첫 번째야 그냥 못나올 사정이 있었겠거니 하고, 기전부에서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를 앞두고서는 사정을 알아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오후 4시 2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