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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간의 승부 - 이런 승부도 있다 - 건조한 생활의 승부
 
나의 반상 일기(2월 24일)
5년간의 승부 - 이런 승부도 있다 - 건조한 생활의 승부


새벽 2시 14분.


친구가 전화를 했다.
그래서 잠 깬 것이 1시.
다시 누워서 잠을 청했으나 말똥말똥.

늦게 자는 버릇을 기억하는 친구들이 많다.

난 늦은 밤까지 깨어있는 편이었다.
아, 술 마시는 것을 일과의 하나로 삼는 사람이 일찍 잘 수야 없지 않은가.

새벽까지 술 마시는 것은 예사였다. 내 아끼는 취미 중의 하나였다.
이계훈 사범도 술을 좋아했는데 - 술 싫어하는 기사는 별로 없었다. 적어도 내 주위의 기사들은 - 술 마시다 남 다 자는 한 밤에 북한산에 오른 적도 있고 여관비 없어 파고다 공원 벤치에서 잠을 청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이건 몸을 해치는 것으로 매우 춥다. 내 맛 본 가장 추운 맛. 파고다 공원 뒤편 허리우드 극장 옆에는 저렴한 해장국 - 순대국이던가 - 새벽 일찍 문을 여는 곳이 있어 기름기 비계와 함께 둥둥 떠다니는 국 한 그릇과 깍두기 한 쪽, 밥 한 공기면 아침 해장으로 충분했다. 막걸리는 빼놓을 수 없는 것이고 값은 80년대 말엽엔 천원 정도 하지 않았나 싶다. 오백원부터 먹어 봤다. 난 그 맛을 매우 좋아했다.


아마도 기사라는 직업이 술 마시는 데 일조를 했던 것이 분명하다. 시간이 많다. 내일 아침 걱정 아니 해도 된다. 숙취를 회복할 때까지 충분히 잠을 청할 수 있다. 과연 그런 생활이 얼마나 오래 갈까 의문은 되지만, 하루하루를 저 먼 미래를 예상해서 가치를 매기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

모두가 그랬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그럴 여지가 높은 직업이었다는 것이다.
요즘?
최근의 사정은 내 잘 모른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의 입단자는 몇 명을 제외하고는 연구생 출신. 당연히 입단 연령만 낮아지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바둑을 성실히 공부한 친구들이다.

세대라는 것은 무서운 변수라서, 시대라는 것도 무서운 변수라서, 개인이 쉽게 그 영향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바둑 시간이란 것도 그런 영향을 떠나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개인의 성격과 자질, 가족과 같은 가까운 환경 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만.


사실, 나는 어정쩡한 시대에 프로로서의 바둑을 두었다. 바둑의 시간표로 본다면.
앞선 60년대 70년대 세대는 매우 어려웠고, 80년대 중반부터 많이 나아졌다.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알기 힘든 시대에서 입단했던 것이다.

직업으로서도 어정쩡한 시기에 프로의 바둑을 두었다.
우리 큰형님이 나에게 새겨주는 바, 직장인의 장점을 갖추지 못한 직업이 자유직들이다. 바둑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에도 친구들과 술을 했는데, 아, 이 친구들. 초반엔 밤새도록 술 마실 듯하더니, 밤이 깊어지자 일어들 서는 것이 아닌가. 그들에게는 내일의 근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자제를 할 수밖에 없는 조건들. 그 조건이 바둑에는 약하다. 자유직에는 약하다.

그에 더하여, ‘나’라는 존재가 프로의 바둑에 변수가 되었다.


여름이 지나고 늦여름이 초가을이 봉원사에 찾아왔다.
망설임의 시간이 지나갔다.

나를 어딘가로 데려다 줄 것이라는 희망으로, 정치학을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서울대에서 해보도록 하자.

그 결정이 내려진 순간부터 나는 준비를 했다.
제2외국어 시험이 있으니 독일어를 하자. 정치학 기출 문제를 보니, 내 배우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부분 다른 분야였다. 할 수 없군. 이것도 해야지. 영어도 까다로운데?
술을 마시면 정신이 맑지 못하니 적게 마시자.
대국을 하지 말자. 다행히 이 부분은 절로 결정되었다. 언덕의 수준이지만, 신왕전 우승과 박카스배 결승으로 오히려 그나마 있었던 열정이 식어버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과연 한 순간에 칼로 무 자르듯 생활이 바뀔 수 있을까? 바꿀 수 있었을까?


있었다.

봉원사 바로 아래 마을은 가을이면 정취情趣가 아리도록 그려지는 곳. 좁은 동네지만 연세대학 뒤 안산은 물론이고 내 하숙집 바로 뒤안만 하더라도 오솔길 오솟하여 주변이 사라지는 곳. 한 번 봉원사 아랫마을 들어오면 외부로 나가기 싫을 정도였다.

난 산책을 매우 좋아했다. 언제나 좋아했다. 아마 산책을 놓아버린 것은 최근 5년 또는 10년이 아닌가 싶다.

산책은 나에게 다른 생활을 열어주었다. 처음에는 독어 공부한다는 명목으로 니이체의 시집을 들고 다니면서 오솔길 걸으며 싯구절詩句節 읽었지만, 곧 그것이 산책과 공부의 맛을 알게 해주었다.

하나의 시작이 다른 문 하나를 쉽게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부라고는 하지 말자. 그냥 필요한 것 읽는 것뿐이다.

사실 건조한 공부가 주는 맛이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건조한 생활이 주는 맛을 한 번 보면, 그 맛이라는 것에 술 마시는 것 못지않게 중독이 된다. 참맛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다. 참맛이란 것은 없다. 그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 내 맛본 것 중에는 건조한 맛이 최고였다. 지금까지 맛본 것 중에는.
담백한 맛이 아니라 건조한 맛.
담백한 맛마저도 건조되어 습기가 사라진 맛.
그 맛은 안개가 하나 걷혀질 때 얻어지는 것. 일상을 벗어나 다른 일상을 만났을 때 얻어지는 것. 생활의 단순함이 주는 것. 생각을 꽤 많이 털어내야 얻어지는 것.


나는 그런 맛을 지금껏 몇 번은 맛보지 않았나 싶다. 그 언제나 몇 개월 못가 끝났지만.
내 권하는 것으로는 이런 거 있다. 1주일 정도 절칸에 틀어 박혀서 책만 읽어보라. 그 맛 비슷한 맛, 맛볼 수 있다.
아, 그러나 그 1주일 시간 얻으려면 그 얼마나 작심3일을 반복해야만 하는가.


내 5년간의 승부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 승부가 주어지고 있었다.

건조한 생활의 승부.
생활의 승부.

그 때가 88년 늦여름과 초가을 근처다.


이른 새벽 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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