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English LG
LG Home English Chinese

생중계
뉴스
기보보기
기보해설
대회개요
대진표
선수소개
역대 우승자 보기

  5년간의 승부 - 열정이 없었으니 - 소외도 낙담도 없었다
 
나의 반상 일기(2월 22일)
5년간의 승부 - 열정이 없었으니 - 소외도 낙담도 없었다


새벽 3시 46분.


생각해본다.
이룬 바 없고 얻은 바 없는 시간인가, 돌아본다.
그런 표현을 할 만큼 나는 목표 지향적이었던가, 물어본다.

지난 해 변화라고 할 만큼의 변화가 나에게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런 변화도 내 생활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미 나도 꽤 나이가 든 것이다. 많은 것들이 결정된 삶. 작은 변화는 변화라고 치부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또는 처음으로,
능동적인 변화를 꾀해야만 할 것인가?
언제나와 다름없이, 이 질문과 답은 여전히 나의 맘속에 들어있다. 다행이다.


1988년.
그 때는 변화가 가능했다. 능동적인 변화가 가능했다.
그것은 내가 몇 년 동안 나의 중심에 두었던 승부에 실패했던 까닭이었다.

내 바둑 생활은 그 자체만으로 본다면 무의미하게 흘러간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 느꼈다.
승부에 큰 집착 없이 4년을 넘게 지낸 것은 그 자체만으로 이미 4년을 떠나보낸 것이었다.
83년 겨울에 입단하여 88년 여름. 시간은 흘러갔고 주변은 변해갔다.

알게 모르게 문득 강산은 변하고, 알게 모르게 인걸은 오감이 없는 것이다.

중심으로 삼았었다. 바둑을.
주변으로 읽었었다. 정치학을.
그 모든 것의 기초가 되었었다. 생활이.


늦은 밤이면,
이대 후문 길 건너 맞은편에 자리 잡은 카페 in my life를 들리곤 했다. 내 하이네켄 즐겨 마시던 곳. 들어서면 마치 열차칸에 탄 듯한 느낌을 주는 곳. 친구와 가면 테이블에 앉고, 혼자면 마담 앞에 앉는다. 내 거처 하숙집을 찾기 전에 마지막 술집으로 들리곤 했다.

늦은 밤이면,
친구와 선배로부터 그들의 생활과 의지와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생활은 한편으로 소외를 양산하는 것. 소외를 들을 수 있다. 소외를 들으면 의지를 새길 수 있다.

아침이면,
어제를 잇는다. 어제를 버리는 것은 대개의 경우 불가능하다. 어제를 잊어버림으로써 어제를 잇는다.


88년 여름에도 생활은 여전했다.
그러므로 문득 문득 일어나는 일편一片 의문.

바둑의 승부가 실패하니 마치 그 승부가 나의 의도된 승부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속에 숨겨진 다른 승부 재료는 없었는가?
나와 동일시되는 그런 승부는 없는가?

분명했다. 비록 바둑의 승부에 실패했다고 하나, 패배는 아니었다.
분명했다. 바둑은 나와 동일시되는 그런 승부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만약 나와 동일시되는 그런 승부였다면, 실패든 패배든 대단히 큰 소외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약간의 아쉬움으로 끝날 그런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내 무엇을 해야 하지?
내 무엇으로 나와 그 무엇을 동일시 할 수 있지?


어느 날, 오랜 만에 지도교수에게 인사를 갔다.
어떻게 지내?
뭐, 그저 그렇습니다.
바둑은 어때?
두긴 두는데 큰 재미는 못 느끼겠고… 당연히 성적도 별로지요.
돈은 좀 벌어?
하하하.
뭘 할 거야? 바둑도 그렇다면 말야.

순간.
공부는 어떨까요?
자문자답이 나왔다.

길이 그밖에 없었을까.
아니면, 언제나 내 맘 깊숙이 숨겨진 욕구였던가.
아니면,

아니면, 이런 것이었을까.

자신이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모르고 살 때가 많다.
자신의 판단이 그 어떤 시대적 흐름에 휩쓸려 자유의지와는 별개로 실제로는 “결정된다는 것”을 모를 때가 많다.
그 어떤 집단에 자신이 속한다는 것을 모를 때가 많다.

80년대 중반은 대학원 진학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경제가 팽창하니 일자리는 많아지고, 당연히 학교에도 수요가 많아진다. 수요와 공급이 적절히 조화될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아쉽게도 90년대 중반은 공급과잉이 나타나던 시대였다. 급격한 수요의 팽창은 그 이상의 공급 과잉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보통이다.

나도 그 유행에 휩쓸렸을까. 그럴 수 있겠다. 그 점이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선생이 말했다.
서울대 가는 게 어때?
여기서는 더 이상 새로운 거 배울 것도 없으니 말야. 다른 선생들한테 배우는 게 좋지 않을까. 나이가 있으니 유학은 좀 위험하고.

내 관심사가 뚜렷하지 못하니, 다른 분야도 맛을 보라는 말씀이었다.
나이가 많고 집중하겠다는 의지도 불분명하니 바둑을 버리는 것도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말씀이었다.

망설임이 찾아왔다.


바둑이 있다는 것. 배수진을 치지 못하는 조건이었다.
이것저것 생각이 분산되어 있다는 것. 공부에 대한 열정 또는 의지에 한계를 안겨준다.

나는 무엇보다도 공부 또는 학문을 밥벌이로 생각지 못했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밥을 그것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필요조건이라기보다 충분조건에 가까운 것이다. 권력에의 의지와 비슷한, 그런, 직업에의 의지가 필요하다.

학문의 수준?
내 보기에, 그건 재능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책에서 스스로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열심히 판다고 해도 오를 수 있는 수준에는 한계가 있다. 운이 닿으면 좀 좋은 과정과 세계 속에 들어가서 자기 능력 이상을 약간은 할 수 있겠지만, 더 이상은 없다.

바둑의 승부?
그것도 내 보기에, 역시 재능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아침 4시 59분.
Top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