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반상 일기(2월 13일)
5년간의 승부 - 봉원사 아래로 - 경계를 옮겼다
아침 7시 19분.
참 좋았다. 이창호와 최철한 두 국수의 도전 3국.
10시간도 넘게 반상에 집중하는 것은 보기만 해도 신뢰가 갔다. 아, 바둑이란 것이 이토록이나 어렵고 어려운 것이구나. 나도 프로지만, 집중, 집중엔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1987년의 늦은 가을이었다. 그 어느 늦은 밤에.
신촌 봉원사奉元寺에 들렀다. 그 밑 사하촌寺下村 친구 집에 들렀다. 지금 부산의 어느 대학에서 문학 가르치는 녀석 집에. 집 옮길 맘 있으면 어디 한 번 찾아볼까? 어떤 곳으로? 번잡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주변이 말야. 여기 네 집 여기 근방도 좋은데…. 깊은 곳이었다.
언제나 자신은 과거를 말할 때 그리 말할 것이다.
그 때는 말야, 그 때는 말야… 좋았거든! 요즘과 달리 한적했어. 밤은 적막했어.
달도 숨어버린 깊은 밤에 둘러보는 봉원사 주변은 무서울 정도로 적적했다. 적막할 정도로 무서웠다. 서낭당 나무가 잎새 마냥 달고 있는 붉은 기원祈願들이 허망하고도 요염한 빛을 뿜는 고개를 지나자 큰 마을이 하나 나타났다.
친구가 말했다. 그래, 이런 곳 어때? 문을 두드리고 찾아 물었다.
야반삼경 夜半三更.
내일 밝을 때 와 보시오.
과연 門은 밤에 두드려 볼만하다.
그 가을에 거처를 옮겼다.
돌아보면 내 한 때의 술로 지낸 나날 중에서도 손꼽는 시절.
돌아보면 술 끊고 기초적인 공부로 매우 충실히 나날을 보내던 시절.
돌아보면 내 한 때라고 남겨두고 싶은 맘 편했던 시절.
그런 시절의 거처.
이대 후문에서 금화터널 쪽을 향하다고 길을 건너 봉원사 언덕길을 오르면 여기 저기 좁은 골목길이 나온다. 그 오른 쪽 두 번째인가 어느 좁은 길을 따라가면 서너 번 굽이 올라가면 - 여름이면 땀으로 몸을 씻는다 - 순간 시골길이 펼쳐진다. 다시 그 길에서 숨을 한 번 고른 뒤, 다시 한 번 기운을 낸다. 그러면 서낭당 고개마루가 나오고 그 바로 옆 집.
집은 대단히 넓었고 아름다운 구조를 이뤘다. 오르막 내리막 좁은 사잇길도 있었고, 매화나무와 감나무, 등나무, 백양목과 옥잠화가 정원을 이루고 있었다. 크고 작은 3개의 출입문이 작은 울타리를 쳐놓은 듯했다.
300평도 더 되었고, 건물만 다섯 채.
그 어느 하나의 건물에 학생들이 모여 살았다.
건물마다 저마다의 객客이자 주인主人이 있었으니, 너와 나의 거리감이 충분히 확보되었다.
짐을 꾸려보니, 그래도 책이 약간 모였다. 책장 하나를 필요로 했다. 바둑판은 없었다. 하숙을 시작하고부터 바둑판은 없었다. 학문이라고 정치학을 선택한 다음에 바로 하숙을 시작했으니, 바둑판은 무거운 것이었다.
바둑판 없이 바둑은 어떻게 공부? 그건 나중에 보자. 사실, 난 지금도 바둑판 없다. 없이 산지 5년이 넘었다.
그런데 참 좁은 것이 세상. 어디 가도 아는 사람을 만날 확률이 높다. 물론 이는 잘 알려진 이론적으로 증명된 것이기도 한데, 그래도 의외의 장소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래도 의외다. 놀란다. 안다는 것과 감탄은 별개의 것.
짐을 옮겨놓고 산책을 했다. 봉원사 가 보고, 주변을 널리 둘러본 분이라면 아실 터인데, 봉원사 주차장 건너편 작은 동산에는 키 큰 미루나무가 몇 그루 서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동산은 공터로 평평한데, 그 공터에 로마의 콜로세움과 같은 그런 건축물이 하나 있다. 하하. 콜로세움이 크게 웃을지도 모르겠다. 본래 무슨 용도로 올렸는지는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인데 짓다가 말았다. 그래서 시멘트 사이로 철근이 비쭉비쭉.
그러나 그 낡고 녹슬은 층계 한 계단 올라가서 안쪽으로 들어서면 매우 포근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둥근 공간은 인간에게 안식감을 주는 경향이 있는 것. 나중에 그 공간에서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었지만, 좌우간 그 동산에서 풀섶을 헤치고 좁은 오솔길을 걸어 내리고 오르면 다시 내 거처가 나왔다.
바로 그 산책길.
너 누구 아니냐! 여긴 웬일이냐?
아, 하숙집을 정했습니다.
어디에? 응? 하하. 나도 그 집에 있어! 하하.
하하. 작은 형의 고교 동창생으로 나에게도 고향 선배가 되는 형이었다.
그 다섯 채에는 하숙생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직업으로 본다면 대학생, 고시생, 재즈 전문가, 태권도 사범, 가수, 조각가, 프로기사 등이 분포를 이루고 있었다.
위쪽에는 요사寮舍채가 있어 스님 - 秀庵 스님, 法名이 맞는가… 틀리더라도 용서해주시리라 - 이 계셨는데 이 분이 참으로 후덕하신 분이었다.
그 때가 이토록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을 보니, 내 그곳에서 보낸 2년이 그토록이나 즐거웠던가 보다.
가을이었다. 깊은 가을이었다.
그랬다. 참 마음에 위안을 주는 곳이었다. 바둑을 두고 친구와 만나고 술을 마시더라도 내 좁은 방에 들어오면 편했다. 마루에 나가면 시원했다. 창을 열면, 동산에 올라서면 쇄락灑落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그런 곳에서 나는 피곤을 풀었다.
바둑을 두었다.
내 앞날에 대해서 약간씩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근심을 그다지 갖지 않은 것은 - 그래서 맘 편히 바둑 두고 술 마시고 노래한 것은 바로 그 높은 언덕 위 바람을 마셨기 때문인가.
그런 점이 있었다. 나도 절을 좋아한다. 그 경계를 좋아한다.
마음 편한 거처가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대단히 고마운 일이다.
나에게도 그런 거처가 한 때 있었다.
귀한 한 때.
그 거처에서 나는 생활하기 시작했다.
아침 8시 3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