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반상 일기(2월 8일)
5년간의 승부 - 돌아온 걸까 - 편하게 바둑을 두다
아침 8시 44분.
어제는 오랜 만에 눈을 봤다. 어릴 때는 그렇게도 눈 속에서 살았던 듯한데 요즘엔 느끼지 못하는지? 환경이 변했는지? 나만 그리 느끼지 않는 것으로 안다. 눈밭으로 가고 싶다.
돌아가고 싶은 거야 누구나의 본능. 회귀 본능.
돌아가고픈가?
문군. 1987년 그 때로 돌아가고픈가?
아니오.
그 때가 내 푸르른 때였음은 잘 아오.
그러나 아니오. 나에게 다른 길은 없었던 것으로 아오. 그 때로 돌아간다해도 내 뭘 달리 할 수 있겠소. 당시, 나에게는 그 판단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고, 또 그런 감정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오.
88년 바둑 1월호에 실린 사진을 보니, 당시 나는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웃옷은 서대문구 모래내 시장에서 1만 2천원을 주고 산 골덴 자켓인데, 내 그 옷 얼마나 맘에 편했는지 약 10년은 입고 다녔었다. 안팎이 너덜너덜해 질 때까지. 뒷머리가 부스스 일어선 것을 보니, 머리도 제대로 아니 빗고 대국장에 나타난 듯하다.
그 사진 앞에 앉은 기사는 또 임선근 五段. 술도 많이 한 친구지만, 바둑도 몇 번 만났었다.
88년 4월호 바둑에 “조훈현과의 복기”에 실린 대국. 백32가 두어진 직후에 사진이 잡혔다. 그 바둑 두기 전까지 나는 10연승을 했다. 논문을 끝내서 아마도 맘이 좀 편했는지 바둑도 잘 풀렸던가 보다. 내 연승 기록 중에 12연승이 제일 좋다.
(박카스배 본선 2국)
제5기 박카스배 본선 토너먼트 제2국. 1987. 12. 4.
白 五段 임선근
黑 四段 문용직
흑107 이하 생략. 흑191 끝. 흑 불계승.
마음 편히 턱 하니 두고 있었던 듯하다. 기백이 그래도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알겠다. 신중치는 못하지만, 두고 싶어서 둔 바둑이라고 본다.
(백1이 맵다)
백28이 큰 실수였다. 나중에 조훈현 국수에게서 들은 것인데 무서운 수법이 있었다. 지금도 뚜렷이 기억나는데, 조 국수는 한 순간에 그 수를 집어냈다. 매운 형태 감각이 나와는 달라도 크게 다르다고 느꼈다.
백1이 좋은 수. 흑2 이하 정도인데 백이 좋다.
(백3을 두어만 준다면)
백3을 두어만 준다면 흑2 흑4가 묘수순이 되겠다. 백5를 A는 흑B 백5 흑C까지 흑이 유리.
(백3으로 흑 곤란)
백3 한칸 뛰어서 흑에게 다음 수가 없다.
솔직히 되는 수 안 되는 수 가리지 않고 둔 듯하다. 그저 기백은 살아있어서. 하하.
바둑을 보니, 기백이 살아있다고 말하는 것이 그리 거짓은 아니겠다. 당시 나는 흑을 잡으면 화점을 많이 두었다. 반상의 안목을 크게 잡아가는 맛을 약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세부적으론 그다지 섬세하지 못한 면이 많았는데, 아마도 그건 속기이기 때문이리라. 그것으로 편하다고 판단하면, 달리 더 좋은 수를 생각지도 않았다. 그건 언제나 그랬다.
아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화점에 대해서는. 요즘과는 화점에 대한 이해가 좀 다르지만, 당시에는 화점이 소목과 비슷한 빈도로 두어지고 있었다. 유행이라고나 할까, 대체적인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기사들의 반상 안목이다. 그건 성적이 좋거나 나쁘거나 거의 차이가 없는 사실이다.
편한 시절이었다.
바둑도 두고 싶은 만큼 두고, 술도 마시고 싶은 만큼 마셨다.
가을엔 四段으로 승단했다. 돈도 별로 못 벌었지만 술 마시느라고 주머니엔 언제나 돈이 아슬아슬하게만 남았다. 없으면 친구에게 술값을 내라고 태연히 말했다. 물론 장가간 친구들이 많아졌는데, 그들도 자주 부르고 만났다. 내 사는 방식으로 그들도 살지 않을까 그리 생각했던 것이다. 친구들도 술 마시는 것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하숙집 후배 중에 매우 얌전한 미남이 한 명 있었는데, 이 친구를 데리고 가을 날 술집에 갔다. 주머니 수표 한두 장 믿고 갔으니 그런대로 마셨겠다.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모르겠다. 다음 날 아침, 옆집 아주머니가 하숙집 아주머니께 말했다 한다. 여기 하숙생인 듯한 사람이 여자와 함께 골목길 의자에서 졸더라고. 하하. 그 후배가 그리 예뻤던 것이다.
그러나 무관심했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뭔가 변화를 찾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하숙집을 좀 옮길까 그리 생각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나 자신에게 안주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면, 나는 집을 옮기는 것을 먼저 생각하곤 했는데, 그 습관이 다시 일어섰던 것이다.
마음이 변하면 당연히 그 변화를 따라서 움직인다.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모를까. 생각이 일어나도 사회의 그물 속에 잡힌 생활이라면 모를까.
왜 변화를 찾고 싶었을까? 다시 맘 편히 바둑도 두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건 바둑에 대한 내 애착의 정도 때문이다. 바둑은 여전히 내가 가야할 길이라고 결정하지 않았다. 마음 속 깊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불안정했던가?
실연도 없지 않았는데, 그 때문에 불안정했을까? … 술을 많이 마실 이유는 되었겠다. 결혼은 약간 겁나는 것이 아니던가.
그래, 분명하다.
당시 난 생활의 목적이 없었다.
아니, 인생이 목적을 가진다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그냥 목적이 없었다. 내 힘으로 인생을 꾸려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의식이 약했다. 그래서 바람이 불면 바람 부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정도로 살아갔다.
이 생각, 저 생각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친구들과 대화는 많이도 했으니까.
친구들이 많았다. 고향도 떠나고 학교도 옮기고 전공도 바꾼 때문인지, 또는 바둑과 학교를 번갈아 다닌 때문인지.
집에 붙어 있는 때가 별로 없었다. 우리 집안의 말씀!
아침 10시 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