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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의 바둑이야기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추억의 기전들
 

요즘 바둑계에서 아쉽게 느껴지는 것 중 하나는 대부분의 타이틀전에 개성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프로기사에게 기풍이란 게 있듯 예전 기전에는 독특한 전통과 이미지가 존재했었다. 그리고 특정 기전을 거점 삼아 이름을 떨친 기사가 있었고, 그런 사례가 화제를 양산하곤 했다. 바둑 팬들로선 그 인연 관계를 확인하며 응원하는 것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옛 기전들은 하나둘씩 사라져 지금은 거의 모두 모습을 감췄다. 기전 별로 특출한 인연을 지닌 기사가 나올 여지도 덩다라 사라졌다. 입체적 재미는 사라지고 그저 승패 확인이 고작인 평면적, 2차원적 타이틀 구도가 고착돼 가고 있다.

한국 바둑계 전통의 기전이라면 단연 국수전이 꼽힌다. 1956년 출범한 국수전은 국내 최고(最古)의 정통 기전이었다. 그 주인은 거의 예외 없이 대한민국 바둑계의 당대 1인자였다. 조남철 김인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박정환 등 한국 바둑 정상 계보가 대를 이어 국수전을 지배했다.

윤기현 하찬석 서봉수 등 빼놓을 수 없는 강자들도 국수전 우승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노장 배테랑들의 무대였던 국수전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신예나 외국인 기사 등에게 문호를 내주면서 한국바둑사를 새롭게 기록했다. 여성으로, 또한 외국인으로 최초 우승한 루이나이웨이를 비롯해 최철한 윤준상 조한승 등 신예들이 우승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기전의 대명사로 통하던 국수전은 2015년 59기 우승자 박정환을 마지막 국수로 배출한 뒤 열리지 않고 있다. 국수전은 공식적으로는 ‘폐지’가 아닌 ‘중단’ 상태이지만 다시 열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주최사도 대회 재개를 위해 스폰서를 찾아 백방으로 뛰었으나 이제는 손을 놓은 모습이다. 국수전이 중단되면서 한국 바둑은 전통과 역사의 중요한 한 기둥을 잃었다.

특정 기전과 기사의 인연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케이스가 서봉수와 명인전의 관계다. 서봉수는 1972년 19살 소년 시절 당대의 거장 조남철로부터 명인위를 탈취했다. 그의 명인전과의 인연은 그 후에도 꾸준히 계속돼 내리 5연패(連霸)를 이루는 등 통산 7번 명인전 우승이란 기록으로 남았다.

서봉수는 그 무렵 동갑 라이벌인 조훈현에게 다른 기전에선 일방적으로 몰리다가도 명인전 무대서만 마주치면 높은 승률을 마크하곤 했다. 비 일본 유학파 중 최초로 메이저 무대를 정복한 서봉수와, 그에게 알뜰한 무대를 제공해 준 명인전은 서로의 성가를 높이며 흥행에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 명언전 역시 2015년 이세돌을 제43기 우승자로 뽑은 뒤 기약 없이 중단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창혁과 왕위전의 관계도 찰떡궁합이었다. 유창혁이 김인 하찬석 서봉수 조훈현을 오가던 왕위 타이틀을 처음 품에 안은 것은 1991년 26기 때였다. 당시 바둑계는 조훈현 서봉수의 맞수싸움이 거의 끝나가면서 조훈현 이창호의 사제 간 정상 다툼으로 판도가 옮겨가던 시절이었다.

유창혁은 그 틈바구니 속에서 왕위에 등극, 4년 연속 우승을 따내면서 자신의 아지트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조훈현이 조국수, 서봉수가 서명인으로 불릴 때 유창혁이 유왕위라고 불렸던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유창혁 개인적으로도 자신의 최다우승 기전은 왕위전(4회)이다. 왕위전은 국수전 명인전보다도 훨씬 이른 2007년, 41기를 마지막으로 문패를 내렸다.

천원전은 야심만만한 신인들이 천하 등정의 교두보로 삼은 기전으로 유명했다. 주최측이 의도적으로 유도한 것도 아니었는데, 역사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색깔이 만들어졌다. 21세기 들어 우리 바둑계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중견 거물들 중 상당수가 천원전서 첫 우승을 기록하며 중원 진출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세돌만 해도 2000년 제5기 천원전이 최초의 우승 무대였다. 박영훈은 이듬해 제6기 천원전서 16세의 기록적 나이로 첫 정상 정복에 성공했다. 최철한의 최초 우승 무대도 2003년 제8기 천원전이었다. 2006년 11기 우승자인 조한승 또한 같은 케이스. 고근태는 2005년 제10기 천원전서 전무후무한 우승을 맛보았다. 그러나 이 기전도 2014년 19기 때 나현을 마지막 우승자로 배출한 뒤 셔터를 내렸다.

폐지 홍수 속에서 아직도 운영되고 있는 기전은 GS칼텍스배, KBS바둑왕전, 그리고 맥심배 정도뿐이다. GS칼텍스배는 23년이란 길지 않은 역사에도 나름 뚜렷한 캐릭터를 확보한 기전이다. 우선 대회 방식을 여러 차례 바꿔가며 의욕적인 진행을 계속해 왔다. 초기 10년은 선수권제, 2006~2010년의 11~15기는 도전제, 2011년 16기부터는 다시 선수권제로 환원했다. 제한시간도 장고방식에서 속기로 변경했다.

이 기전의 특징은 3년 이상 타이틀을 장기 보유한 기사가 한 명도 없었다는 점. 2년 연속 우승자가 3명 배출됐을 뿐이다. 대회 초기의 ‘대세’는 이창호였지만 그 역시 2연패가 고작이었다. 최철한 이세돌 박영훈 조한승 원성진 박정환 김지석 목진석 이동훈 안국현을 거쳐 현재는 18세 소년 신진서가 타이틀을 쥐고 있다.

KBS바둑왕전도 타이틀 보유자가 한국 1인자일 때가 많았다. 속기 기전이지만 그만큼 의외성이 적고 대표성이 높은 타이틀전이었다는 방증이다. 조현현 서봉수 하찬석 이창호 유창혁 등이 1999년까지 각축하다가, 2000년 20세 청년 목진석의 첫 우승을 신호탄으로 세대교체의 물줄기가 거세게 몰아닥쳤다. 2011년 이후 바둑왕전서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온 기사는 박정환이다.

맥심배는 9단들에게만 출전자격이 주어지다보니 자연스럽게 특성화가 이뤄진 느낌이다. 실적과 단위를 연동하기 시작한 이후 9단의 실력이 충실해지면서 맥심배도 국내 최고 기사들 간의 각축장으로 자리 잡았다. 이세돌이 통산 최다 우승(5회)을 기록했고 최철한과 박정환이 각 3회 우승했다. 현재 타이틀 보유자는 조한승 9단이다.

전통 방식의 옛 기전들이 사라지면서 드넓어진 운동장을 독차지한 것이 한국바둑리그다. 총규모 34억(퓨쳐스리그 포함), 우승 팀 상금만 2억원에 달하는 매머스 기전이다., 한국기원도 종전 재래식 기전이 사라진 대신 그 자리를 통폐합(?) 했다는 식으로 밴명하곤 한다. 하지만 기전 환경이 단순화되면서 다양하던 기전별 특성이 무너지고 보는 재미도 반감됐다.

기전이 여럿이면 대회 운영방식, 제한 시간, 덤 크기, 흑백 선택법(돌 가리기) 등 여러 재료들을 버무려 다채로운 요리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운영방식 역시 토너먼트, 리그, 라운드로빈, 더블 일리미네이션, 스위스리그 등 적용 방법이 수없이 많다. 패자부활제도 있고, 리그와 토너먼트 절충 방식도 가능하다.

바둑리그 방식의 단체전 대회는 하나로 족한데 시니어, 여성에다 최근엔 루키리그까지 열려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지금 바둑계에 도전제 기전의 씨가 말랐다는 사실이다. 40대 이상 팬들은 이래저래 국수전 왕위전 명인전 기성전 패왕전…을 못내 그리워한다. 바둑의 매력은 규격화 아닌 자유로움에 있다. 지금과 같은 단세포적 운영을 고집하고 변화를 외면한다면 팬들이 갈수록 더 떨어져나갈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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