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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의 바둑이야기
  5년만의 농심배 탈환 나서는 한국바둑
 

세계 바둑계에서 중국의 독주가 계속되고 있다. 현재 거행 중인 7대 메이저 개인전이 모두 중국 기사의 손아귀 안에 있다. 2000년대 진입 후 초반까지 계속되던 ‘한국 독주시대‘가 춘추전국 시대를 거쳐 중국에게 넘어간 지 10년을 바라본다. 개인전 패권을 넘겨준 것 못지않게 아쉬운 것이 단체전의 한국 이탈이다. 국가대항 연승전인 농심배 우승 트로피가 4년 연속 중국 땅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농심배는 한국 중국 일본 등 세계 바둑 3강에서 각 5명씩의 대표 기사가 나와 연승제로 우승을 겨루는 국가 대항전이다. 이기는 기사가 질 때까지 두고, 끝까지 생존자가 존재하는 팀이 우승한다. 3각 토너먼트라고 부를 수 있는 절묘한 방식이다. 국가 별 바둑 실력의 총화를 가늠해 보면서 특정 개인의 실력도 모두 비교해 볼 수 있는 매력 있는 대회다.

이 대회 방식은 1991년 SBS TV가 개국 기념행사로 개최했던 SBS 세계 최강전에서 처음 도입됐다. SBS 측은 이 대회를 1회로 끝내고 이듬해부터는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이란 이름으로 바꿔 운영했다. 진로배는 92년 1회가 시작돼 97년 2월까지 5년간 치러진 뒤, 외환위기 광풍에 휩쓸린 스폰서가 손을 놓는 바람에 사라졌다. 1999년 (주)농심이 타이틀 스폰서를 맡으면서 이 형식의 대회가 이어지고 있다.

SBS 세계 최강전-진로배-농심배로 이어져온 국가대항 연승전은 한국 바둑 자존심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난해까지 총 24번의 대회에서 중국이 6회, 일본이 단 1회 우승했고 나머지 17번을 한국이 석권해왔다. 매년 쏟아진 신화와 드라마는 대부분 한국을 위한 것이었고 우리 국민들은 환호하며 한국 바둑을 통해 자존심을 채워왔다.

제5회 진로배 때 서봉수가 기록한 9연승은 지금까지도 국가 연승전 최다 연승기록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국가연승전이 배출한 최고 영웅은 역시 불세출의 천재 이창호였다. 그는 1회 원년 대회부터 6회 대회까지 6년 연속 한국의 최종 주자를 맡아 무려 14연승의 신화를 썼다. 특히 2005년 6회 대회 때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등판, 5연승으로 기적적인 역전 우승을 이끈 감동은 아직도 자주 회자된다.

이창호는 총 13차례에 걸쳐 농심배 태극 마크를 달았다. 그 중 실제 바둑돌을 잡은 것은 11회였다. 주장은 12회를 맡았다. 국가 연승전 주장(최종주자)은 그에 앞서 출전하는 1~4번 주자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비중이 높다. 주장의 패배는 곧 팀의 탈락을, 연승은 팀의 우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창호가 자신의 손길로 우승을 확정지은 횟수만 8회에 달한다. 그의 농심배 총전적은 물경 19승 3패였다.

하지만 한국 바둑의 요람 또는 아지트처럼 인식되던 농심배 드라마가 최근 들어 반전하고 있다. 2013년 열린 제15회 대회부터 내리 4년 간 우승컵이 중국으로 넘어간 것이다. 하필이면 후원사가 단체전 우승 상금을 2억원에서 5억원으로 대폭 인상한 직후부터 중국의 독식이 4년 연속 이어졌다. ‘국부 유출’을 더 이상 막는 차원에서라도 한국이 우승을 되찾아 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배경 아래 현재 제19회 농심배가 열리고 있다. 지난 9월 1라운드까지 마친 결과 한국이 출전 3개국 중 가장 호조다. 유일하게 5명 전원 살아있는 반면 중국과 일본은 각 3명씩의 병력만 남긴 상황이다. 한국의 1번 주자로 출전한 신민준(18) 6단이 중국과 일본 기사들을 상대로 파죽의 4연승을 기록한 덕분이다.

신민준은 대회 개막전서 전년도 농심배서 영웅으로 떠올랐던 중국 판팅위를 잠재우는 깜짝 쇼로 이변을 예고했다. 뒤이어 일본 위정치, 중국 저우루이양, 일본 쉬자위안이 차례로 신민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한국 기사가 1라운드에 벌어진 네 판을 싹쓸이 석권한 것은 2002년 제4회 대회 때의 박영훈 이후 무려 15년만이다. 이창호가 5연승했던 ‘상하이 대첩’에 빗대 ‘선양(瀋陽) 대첩’으로 명명될 정도로 국내 팬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제19회 농심배 2라운드가 11월 24일부터 28일까지 부산에서 벌어진다. 신민준의 초반 활약으로 한국이 절대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우승까지 가는 길은 멀다. 경쟁국들의 쟁쟁한 고수들이 출전 차례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 중국은 세계 최강자로 인정받는 커제와 세계 챔프 출신의 강호 천야오예, 그리고 당이페이가 대기 중이다. 일본 역시 1인자 이야마 유타를 필두로 야마시타 게이고, 이치리키 료가 남아있다.

현 시점에서 최대 관심사는 신민준이 앞으로 몇 승을 더 추가하느냐에 쏠린다. 이미 자기 몫을 하고도 남았지만 기세는 전혀 시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1라운드 종료 후 “1차 목표는 달성됐다”고 했는데 내친 김에 기록을 경신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신민준이 남은 중일 연합군 6명을 모두 꺾는다면 국가대항 연승전 사상 처음인 10연승 퍼펙트 기록이 나올 수도 있다(물론 꿈같은 이야기다).

전승 퍼펙트까지는 몰라도 농심배 최다 연승기록에는 도전해 보겠다는 것이 신민준의 야심이다. 지난 해 판팅위가 기록한 농심배 연승 기록 7연승까지 3승이 남았다. 그 다음이 5연승으로 한국 이창호 강동윤, 중국 셰허 펑첸 후야오위 등 총 5명이 기록하고 있다. 신민준은 앞으로 1승만 더 보태면 농심배 역대 최다연승 동률 2위까지 올라서게 된다.

신민준은 농심배 본선 개최에 앞서 벌어졌던 국가대표 선발전서 6연승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예선 결승 상대가 스승인 이세돌 9단이었다. 예선전적과 본선서 거둔 4연승을 포함하면 신민준은 이번 농심배서 10연승 무패가도를 달리고 있는 셈이다. 3연승 시 연승 상금 1000만원, 이후 1승씩 더해질 때마다 1000만원씩 연승 상금도 추가되는 대회 규정에 따라 그는 이미 2000만원의 연승 상금을 확보해놓고 있다.

신민준의 부산 2라운드 첫 상대는 중국이 3번 주자로 예고한 천야오예 9단이다. 신민준과 천야오예는 2015년 삼성화재배 예선서 딱 한 번 맞닥뜨린 적이 있는데 당시 승자는 신민준이었다. 신민준 대 커제는 커제가 3승 2패로 앞서 있다. 천하의 커제를 2번이나 꺾으면서 신민준은 한때 ‘커제 저격수’라고 불렸다. 당이페이와는 아직 한 번도 대결한 적이 없다.

어느 시점에서 신민준의 연승이 멈춘다면 나머지 4명이 한국 우승 완성을 위해 출격한다. 현재 대기 중인 한국 병력은 박정환 9단, 김지석 9단, 신진서 8단, 김명훈 5단이다. 박정환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1인자다. 랭킹 2위 신진서와 신민준, 김명훈 등 3명은 농심배 첫 나들이지만 모두 새파랗게 날이 선 일당백의 정예들이다. 여기에 와일드카드로 합류한 김지석이 노련하게 후배들을 이끌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경험과 패기가 잘 어우러진 진용이다.

농심배 초반 14년간 우승 판도는 한국 11회, 중국 2회, 일본 1회였다. 그 기간 총 승수 합계도 한국(81승)이 중국(67승)과 일본(37승)을 압도했다. 이것이 2013년 15회 대회부터 중국의 4연패(連覇)에 총 승수 격차(중국 27승, 한국 16승, 일본 9승)으로 바뀌었다. 신민준 태풍으로 재무장한 한국이 올해 농심배서 힘을 내 한국의 국가 연승전 석권 전통을 되찾아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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