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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의 바둑이야기
  알파고의 두 번째 바둑 쇼
 


인공지능 대국 프로그램 알파고의 두 번째 바둑 쇼가 임박했다. 알파고는 인간 세계 최강의 프로 기사 커제와의 3번기를 포함해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우수성을 과시할 예정이다. ‘바둑의 미래 우젠 서미트’란 이름이 붙은 이 행사 장소는 중국 우젠(烏鎭)시이며 5월 23일부터 27일까지 닷새 동안 이어진다.

알파고 대 커제전은 지난 해 3월 서울서 열렸던 알파고 대 이세돌전에 이은 2탄이다. 알파고가 열세 예상을 뒤엎고 이세돌에게 4승 1패로 승리하자 바둑계와 과학계에선 “현역 세계 최강자인 커제와 붙여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1년 여의 준비 끝에 마침내 빛을 보게 됐다.

주목해야 할 것은 알파고가 1년 전에 비해 훨씬 더 강해진 실력으로 링에 오른다는 점이다. 알파고는 구글 딥마인드사 개발팀에 의해 강화학습(딥러닝) 방식으로 개량, 인간 기보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기리(棋理)를 터득하면서 가공스런 실력 발전을 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알파고는 지난 연말부터 올해 연초로 이어진 세계 최고수급들과의 60국을 모조리 승리함으로써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했다.

알파고의 ‘연말연시 대첩‘ 60판 상대 가운데는 커제도 포함돼 있다. 알파고는 이 때 커제와 세 판을 겨뤄 모두 이겼다. 커제와 함께 세계 최강자 중 한 명으로 뽑히는 한국 톱랭커 박정환은 알파고에게 무려 6전 전패를 당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커제가 이번 알파고와의 3연전에서 승리할 것으로 믿는 전문가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박정환은 “이번 알파고는 지난 해 이세돌 9단과 싸웠던 알파고와 달리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초반에 밀려버렸고 그 뒤엔 반격 기회가 없었다”면서 “내가 정선(定先)으로 둔다면 피차 만만치 않을 것 같다”고 평했다. 최정상권 기사가 스스로 호선(互先) 치수로 견디지 못한다고 고백한 것은 충격적이다. 이번 우젠 행사 때 상담기 대결에 중국 대표로 출전하는 미위팅도 개막 회견에서 “커제가 승리할 확률이 높지 않다”고 말했는데, 이는 승산이 희박하다는 의견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커제 당사자는 어떤 입장일까. 지난 해 이세돌 대 알파고전이 한창일 때 커제가 했던 어록부터 살펴보자. 5번기가 시작되기 전 커제는 “이세돌이 이기는데 100% 걸겠다”고 했다. 그 역시 알파고의 실력을 대단치 않게 보고 있었다는 증거다. 알파고가 예상을 뒤엎고 2연승을 거두자 커제는 “이세돌은 인류 대표 기사로서 자격이 없다”며 자신이 출전하지 못한 데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나는 이세돌과의 전적에서 8대 2로 앞서 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겨도 나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란 원색적(?) 코멘트도 서슴지 않았었다.

하지만 스코어가 3대0으로 벌어지자 커제의 말도 바뀌기 시작했다. “알파고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됐다. 나의 알파고 상대 승률 기대치는 이제 보니 한 5% 정도 밖에 안 될 것 같다”며 물러섰다. 자신의 웨이보에 “인류는 수천년 동안 실전을 통해 바둑을 진화시켜 왔는데, 컴퓨터가 인류의 바둑 해석이 틀렸다고 말하고 있다. 그 충격에 잠 한 숨도 못잤다”고 썼다.

지난 4월 10일 베이징 중국기원에서 우젠 행사가 발표됐다. 너나없이 알파고의 커제에 대한 낙승을 점치는 분위기 속에서 기자 회견이 시작됐고 커제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여기서 커제는 결연한 의지를 밝힌다. 1년 전의 의기소침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함부로 나의 패배를 말하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싶다. 인류 지혜의 성지인 바둑을 기계에게 내줄 수는 없다. 반드시 이긴다는 정신으로 싸울 것이다.” 이 임전 소감이 진정한 자신감에서 나온 것인지, 열세를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려는 안간힘인지는 분명치 않다.

커제는 알파고가 한창 맹위를 떨칠 때 위축된 모습을 보이다가도 “인공지능을 무력화시킬 비책이 있다”고 말해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커제가 말한 비책에 대해 일부에선 흉내바둑, 3패 또는 4패를 유도하는 복잡한 국면 전개 등 여러 추측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변칙 수법을 실제 효과로 이어가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이 간혹 범하는 사활 미스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커제 쪽에선 이번 알파고전의 제한 시간이 3시간이란 데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 해 이세돌이 알파고와 싸울 때 주어진 2시간보다 1시간이나 길다. 인공지능 바둑의 수읽기 속도가 워낙 빨라서 시간이 길수록 인간이 그나마 버텨볼 수 있다는 게 정설이다. 60전 전승을 거둘 당시 알파고는 모든 수를 20초 이내에 두어치웠고, 인간 고수들은 이 템포에 맥을 못 춘 채 추풍낙엽처럼 무릎을 꿇어야했다. 제한 시간을 다 쓴 뒤 주어지는 초읽기도 이세돌 때의 1분 3회에서 이번엔 1분 5회로 완화됐다. 알파고 대 커제전은 23, 25, 27일 벌어진다.

이번 우젠 행사에선 메인이벤트 외에 몇 가지 부대행사가 식탁에 오른다. 알파고의 뛰어난 성능을 더 분명하게 과시하려는 뜻도 있겠지만, 메인이벤트의 결말이 뻔하다는 분위기를 메우기 위한 ‘메뉴 다변화’의 의도도 있어 보인다. 커제 대 알파고전이만약 예측 불허의 접전이었다면 이같은 흥행책을 동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부대 이벤트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다면기다. 알파고를 상대로 미위팅(2위), 저우루이양(4위), 천야오예(5위), 스웨(8위), 탕웨이싱(20위· 이상 5월 중국랭킹 기준) 등 5명이 협의를 거쳐 착점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바둑판에 돌을 놓아보는 검토가 허용되는 파격적 방식이다.

상담기는 구성원들의 지혜를 합하고 실수를 예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호흡이 안 맞을 경우 혼자 두는 것 보다도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번 중국 대표팀은 5명 모두 세계 제패를 경험해본 강자들인데, 그럴수록 저마다의 강한 개성을 한데 묶을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중국은 이미 주강배, 금용성배 등 몇 차례 국가대항 상담기를 개최한 바 있지만 그 때마다 한국 좋은 일을 하는데 그쳤었다. 다면기는 한 쪽 당 2시간 30분에 1분 초읽기 3회가 주어지며 26일 오후에 열린다.

26일 오전엔 페어바둑도 선보인다. 페어바둑에 나설 기사로는 중국의 구리(16위)와 렌샤오(3위)로 결정됐다. 구리와 알파고A가 한 팀, 렌샤오와 알파고B가 상대 팀을 이뤄 겨루는 복식 경기다. 어느 쪽이 이겨도 긴장감을 느낄 수 없는 구성이어서 이 경기야 말로 관중 서비스용 순수 이벤트로 평가된다. 페어바둑은 1시간에 1분 초읽기 1회로 치러질 예정.

이밖에 24일엔 인공지능 발전상을 알리고 토론하는 포럼이 잡혀 있다. 이번 우젠 행사는 알파고를 매개로 인공지능의 개발 수준을 과시하려는 구글 측과, 기술 입국의 야심 속에 IT 및 인공지능 기술력 제고에 안간힘을 쏟고 있는 중국 정부의 목표가 맞아떨어져 함께 여는 행사다. 중국이 대표적 인터넷 도시로 개발한 우젠 시 컨벤션센터에선 이번 행사기간 동안 인공지능과 관련된 각종 체험 부스, 세미나 등이 쉴 새 없이 이어질 계획이다.

알파고로 인해 바둑은 이미 인공지능과 인간 간의 균형이 깨졌다고들 한다. 그 분석이 옳은지 여부는 이번 알파고-커제전 결과로 판가름 날 것이다. 승패를 떠나 얻을 것도 많다. 인공지능의 발달 한계가 아디까지이고, 이 가공할 신기술을 통해 인류 바둑은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도 힌트를 얻게될 것이다. 지난해만 해도 인간이 알파고를 실험하던 상황에서 이제는 알파고가 인간을 실험하는 시대로 갈아타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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