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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의 바둑이야기
  송아지 3총사의 놀라운 생명력
 

2016년 말 들려온 박영훈의 승리 소식은 1년 내내 한국 바둑계를 억눌렀던 우울함을 한 방에 씻어주는 낭보였다. 12월 22일 중국 장쑤성 화이안(淮安)서 열린 제11회 춘란배 대회서 당당히 결승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전해온 것. 특히 준결승 상대가 지난 1년 전 세계를 호령했던 1인자 커제(柯潔)였다는 점이 팬들을 더욱 열광시켰다.

박영훈은 이에 앞서 중국 랭킹 3위(대국 당시)였던 저우루이양(周睿羊)과 7위 롄샤오(連笑)를 잇달아 눕히고 결승에 올랐었다. 지난 해 대다수 국제대회서 줄줄이 탈락했던 한국 바둑은 이제 박영훈을 반격의 지렛대삼아 세계 도전을 지속할 수 있게 됐다. 박영훈은 오는 6월 중국 탄샤오(檀嘯)와 상금 15만달러(약 1억8000만원)를 걸고 결승 3번기를 펼칠 예정이다.

박영훈은 85년생으로 새해 4월 만 32세가 된다. 한국식으로 따지면 33세다. 이번 낭보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은 그의 나이다. 조훈현을 제외하면 한국이 배출한 역대 최고수 스타들 대부분이 서른 살을 고비로 급격한 퇴조를 보여 왔다. 양대 간판인 이창호와 이세돌도 예외가 아니었다. 박영훈이 만약 이번 춘란배 대회서 세계 정상에 선다면 연령 측면에서 기념비적 업적을 남기게 된다.

박영훈은 소띠다. 최철한 원성진 등 85년생 동갑나기들과 3명이 어릴 때부터 ‘송아지 삼총사’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게 벌써 언제 적 얘기인가. 바둑으로 치자면 ‘환갑’을 넘어선 30대에 세계 정상에 또 다시 도전하고 나섰다는 건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번 춘란배 준결승서 박영훈이 눕힌 세계 톱스타 커제는 1997년 생으로 역시 소띠다. 한국의 원조 소띠 박영훈이 12년 차이가 나는 ‘띠동갑’ 세계 챔프 커제를 눕혔다는 얘기다.

박영훈은 2004년과 2007년 후지쓰배를 통해 세계 정상을 밟았었다. 마이너급 국제대회인 대만 중환배까지 포함하면 그의 우승 회수는 3번에 달한다. 만약 올해 춘란배를 들어 올리게 된다면 꼭 10년 만에 세계 정상에 복귀하는 셈인데, 이것도 사례가 드문 진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내친 김에 ‘최철한 송아지‘와 ’원성진 송아지‘도 살펴보자. 이들 또한 바둑계 시계로 보자면 노익장(?)에 해당하는 맹활약을 보이고 있다. 최철한은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최대 국내 행사인 바둑리그, 갑조리그서 2016년 한 해 동안 눈부신 성적으로 건재를 과시했다. 한국의 바둑리그에선 포스코켐텍 팀 주장을 맡아 9승 6패(다승 11위)로 팀의 준우승을 견인했다. 중국리그의 성적은 더 뛰어나 청두팀 주장으로 13승 6패란 발군의 성적표를 받아 쥐었다. 최철한은 30줄에 접어든 이후인 2015년 GS칼텍스배 준우승, 맥심배 우승 등 줄기찬 활약을 계속 중이다.

또 한 명의 송아지 용사 원성진이 2016년 보여준 활약은 최철한보다 더 화려했다. 제대 복귀 원년에 해당하는 지난 해 그는 2년에 걸친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전성기에 못지 않게 펄펄 날았다. 제3회 바이링배 세계바둑오픈에 한국 대표로 출전, 중국의 팔팔한 신예 2명을 상대로 몸을 푼 뒤 8월 구이양서 벌어진 준결승서도 일을 냈다. 3번기 1국에서 세계 넘버 원 커제를 상대로 먼저 선제점을 거둔 것. 이후 여러 번의 찬스를 놓치고 결국 1대2로 역전패, 결승 진출권을 내주긴 했지만 ‘한국산 송아지’의 위력을 유감없이 떨쳤다.

뿐만 아니었다. 지난 한 해 원성진은 9단들만의 경연장인 맥심배서 31세의 나이로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가 결승까지 진격했다. 마지막 결승전서 이세돌의 예봉에 막혀 우승까지는 따내지 못했다. 미모의 바둑 여성캐스터 이소용씨와의 결혼을 앞두었단 그는 “예비 신부에게 우승컵을 바치겠다”고 선언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다. 제대 직후인 2015년 12월부터 2016년 연초까지엔 무려 15연승이란 무시무시한 전적을 써넣기도 했다.

송아지 3총사는 1990년대 후반 10대 중반의 나이로 한 명씩 등장,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한국 바둑 전성기의 중요한 축을 맡았다. 이창호의 서슬 퍼런 독재(?) 속에서도 셋의 존재는 주머니속의 송곳처럼 솟구쳤다. 송아지 3총사는 당대의 최고수 이창호 신화가 낳은 ‘이창호 키즈’의 결정판이었다. 이창호와 이들 송아지들의 나이 차는 꼭 10년이다.

한국기원 연구생에 가장 먼저 입적(入籍)한 송아지는 3명 중 원성진이었다. 그의 나이 만 8세,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몇 달 뒤 박영훈이 연구생에 합류했다. 당시 권갑룡 도장서 공부하던 최철한은 입단을 눈앞에 둔 시점 처음 연구생으로 등록했다. 원성진은 거꾸로 입단하기 몇 달 전 권갑룡 도장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원성진과 최철한의 만남이 부쩍 잦아졌다.

박영훈은 95년 가을 연구생 자퇴를 결행한다. 2년 반에 걸친 연구생 생활이 너무 온실 같은데다 기대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자 단행한 승부수였다. 그는 이후 1999년 입단할 때까지 아마추어 바둑선수로 전국을 돌며 거친 야전(野戰)으로 기량을 연마했다. 이 기간 전국대회 우승 회수가 7회에 이르렀는데, 이 중엔 97년 11세란 최연소 기록으로 우승한 전국아마십강전도 있다.


셋 중 입단은 최철한이 가장 먼저 했다. 97년 5월, 12세 2개월 때였다. 원성진이 최철한보다 꼭 1년 뒤 프로세계에 합류했다. 박영훈은 1999년 12월, 만 14세 8개월의 나이로 입단했다. 하지만 셋 중 최초로 결승무대 진출에 성공한 기사는 원성진으로, 99년 제3기 신예프로10걸전서 준우승했다. 그 이듬해엔 최철한이 제2회 농심배 태극 마크를 가장 먼저 따내더니 본선서도 당당히 3연승, 웅비를 시작했다.

2001년엔 박영훈이 포효했다. 제6기 천원전 결승서 16세 8개월의 나이로 윤성현을 따돌리고 우승한 것. 송아지 3명 중 최초의 타이틀 획득이었던 데다, 바둑사적으로도 최연소 1위, 최저단 타이, 최단기 2위에 해당하는 대형 사건이었다. 셋은 18세 되던 2003년부터는 세계 접수에 나선다. 박영훈이 삼성화재배 준우승, 원성진은 LG배 4강에 올랐다. 그 해 말 최철한은 첫 국내 타이틀(천원전)을 목에 건다. 세계 메이저 첫 우승은 박영훈의 몫이었다.

2016년 이들 세 명의 송아지가 작성한 성적 통계를 보면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비슷하다. 최철한이 36승 22패(다승 12위 승률 33위), 박영훈 36승 20패(다승 12위 승률 29위), 원성진 35승 18패(다승 14위 승률 21위)로 난형난제다. 2017년 1월 초 발표된 새해 첫 랭킹은 박영훈 4위, 최철한 5위, 원성진 9위다. 현 국내 랭킹 베스트 10중 10대 기사는 신진서 이동훈 2명, 베스트 20으로 넓혀봐도 신민준 1명이 가세해 3명에 불과하다.

최철한 원성진 박영훈으로 구성된 소위 송아지 3총사가 얼마나 오래 한국바둑의 대들보 구실을 하고 있는지 재삼 확인된다. 이창호 목진석 이세돌 조한승 등 선배 그룹, 백홍석 이영구 송태곤 윤준상 허영호 김지석 강동윤의 후배 그룹 사이에서 송아지들은 기나긴 생명력을 과시하며 한국 바둑을 떠받쳤다. 중국 상위권 랭커를 살펴봐도 30대는 구리, 왕시 등 몇 명 되지 않는다.

한국 송아지 3총사는 대단한 재능과 함께 끈기와 노력까지 타고 났다. 이런 예는 앞으로 많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송아지 3총사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박영훈의 세계도전이 성공할지, 원성진과 최철한이 또 어떤 진기록을 쏟아낼지 지켜봐야 한다. 바둑계 ‘서른 살 환갑론‘은 송아지들에 의해 완전히 고쳐 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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