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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의 바둑이야기
  바둑계로서도 최악이었던 2016년
 

▲ 응씨배결승

올 한해 한국바둑의 국제대회 성적을 복기(復棋)해 보노라면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바둑은 승부이고, 승부는 결과로 말한다. 한국은 2016년 1년 간 중국과의 패권 경쟁서 줄줄이 완패했다. 대통령의 실정(失政)으로 야기된 어지러운 정국이 2016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었다면, 바둑계 거울에 비쳐진 지난 1년 또한 그에 못지않은 실망과 탄식의 연속이었다.

한국 바둑은 금년 한 해 출발부터 실족했다. 전년도 연말에 시작해 새해 벽두로 이어진 제2회 몽백합배 결승 5번기서 한국의 호프 이세돌은 중국 커제에게 2대3으로 분패하면서 우승을 내주었다. 그 상서롭지 못한 전조(前兆)는 결국 한해 내내 이어졌다. 이세돌은 어느 새 천적으로 떠오른 이 14세 연하 중국 청년에게 세계 3관왕이란 날개를 달아주면서 조연 역할에 머물렀다.

3월 들어 이어진 제17회 농심배 또한 ‘중국 좋은 일‘로 끝났다. 그리고 그 엔딩 또한 몽백합배처럼 이세돌과 커제란 똑같은 배역이 소화했다. 한국의 마지막 주자로 상하이에 입성한 이세돌은 3연승을 질주하며 극적 역전 우승 기회를 잡는 듯했지만 이번에도 중국 최종 주자 커제의 벽에 막히며 무너졌다. 커제는 그 최종국서 승리함으로써 3년 연속 중국의 농심배 우승을 확정했다.

국제 바둑계에서 유일한 연승제 방식 단체전으로 인기를 모아온 농심배에서 한국이 겪고 있는 부진 악령은 올해 가을 시작된 18회 대회서도 이어지고 있다. 2라운드를 마친 12월 말 현재 남은 병력 수는 중국 4명, 한국은 일본과 똑같은 1명으로 우승 탈환 전망이 밝지 않다. 박정환의 1승으로 가까스로 중도 탈락을 면한 한국은 내년 2월 속행될 최종 라운드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고 있다. 박정환이 중국 4명, 일본 1명을 상대로 5연승을 보태 총 6연승을 거둘 경우에만 역전 우승할 수 있는 매우 불리한 여건이다. 우승국 단체 상금을 2억원에서 5억원으로 대폭 올린 뒤 한국은 한 번도 정상에 서보지 못하고 있다.

‘여자 농심배’로 불리는 제6회 황룡사쌍등배(4월 7~13일)도 중국이 가져갔다. 김채영의 4연승도 보람 없었다. 왕천싱의 3연승으로 우승을 향한 징검다리를 놓은 중국은 에이스 위즈잉이 한국의 오유진, 최정 투톱을 연파하면서 4회 대회 이후 2년 만에 패권을 되찾아갔다. 뒤이어 열린 또 다른 형식의 여자 단체전인 천태산 농상은행배서도 최정 오유진 오정아로 포진한 한국이 중국에 우승을 내주어야 했다.

‘중국 공포‘는 주니어 대결장에까지 미쳤다. 20세 이하 세계 영재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제3회 글로비스배에서 중국의 리친청이 일본 쉬자위안을 꺾고 우승했다. 신진서 이동훈 변상일 등 국내 최고의 영재들이 모두 출전한 한국으로선 안타까운 결과였다. 변상일이 3위로 최고 성적을 올렸고 이동훈과 신진서는 8강에 머물렀다. 10월 일본서 벌어졌던 단체전 형식의 제3회 오카게배 국제신예대항전 결승서도 중국은 한국을 3대2로 눌렀다. 이지현과 오유진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나머지 선수들이 부진했다.

2016년 한해 국제대회서 가장 아까웠던 순간이라면 아무래도 제8회 잉씨배를 꼽아야 할 것 같다. 한국은 강동윤과 김지석이 8강에 머물며 탈락했지만 박정환 이세돌이 4강에 올랐고, 준결승에서 박정환이 이세돌을 꺾으며 결승에 진출했다. 패권 다툼 상대는 중국의 동갑내기 탕웨이싱. 랭킹이나 상대전적, 국제대회 경험 등 모든 면에서 박정환의 승리가 점쳐졌으나 우승자는 탕웨이싱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도 스코어는 3대2였다.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최철한 등 한국 1인자 계보가 꼬리를 물고 우승, ‘한국 기사들의 세습 기전’이라고까지 불리던 잉씨배여서 박정환의 정상 등극을 믿었던 국내 팬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전기(前期) 준우승자는 차기 대회서 우승한다던 징크스도 이어지지 않았다. 잉씨배는 ‘바둑올림픽’이란 애칭과 함께 4년 터울로 열려 중국이 우승자 리스트에 4년 간 매년 최소 1명의 이름을 확보하고 들어간다는 점도 아쉬운 일이다.

잉씨배 종료 후 가을이 깊어지고 연말이 가까워 오면서 우리 바둑계는 더욱 의기소침해졌다. 중국기사끼리 패권을 다투는 메이저 국제기전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2016 삼성화재배 결승이 12월 초 한국서 벌어져 커제가 중국 동료기사 퉈자시를 2대1로 물리치고 우승했다. 커제는 중국 기사 가운데 동일 메이저 국제기전을 2년 연속 제패한 첫 기록까지 꿰차 한국 바둑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삼성화재배로선 2년 연속 중국 대 중국의 결승을 지켜본 셈이 됐다.

이 대회 직후인 12월 14일부터 속개되는 제3회 바이링배 결승전 또한 커제 대 천야오예의 중중전으로 치러진다. 결승 5번기 중 2국까지 소화한 현재 천야오예가 2대0으로 앞서고 있지만 최근 커제의 기세로 볼 때 대역전 드라마도 가능해 보인다. 아무튼 바이링배는 2012년 창설 이후 3번의 대회를 치르는 동안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중국기사끼리 결승전을 펼침으로써 한국기사가 결승 문턱에도 못 가본 ‘금한(禁韓)기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내년 2월이면 우리는 또 한 번의 중국 대 중국 결승전을 지켜보아야 한다. 바로 제21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이다. 한국은 박정환과 신진서 등 최고의 정예 2명이 11월 8강 고지를 넘어 4강까지 올랐으나 준결승서 두 명 모두 좋았던 바둑을 역전패, 결승행 티켓을 놓친 채 귀국해야 했다. 저우루이양과 당이페이 두 명 중 한 명이 마지막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21회 LG배의 준결승 결과가 특히 아까운 것은 이 기전이 2016년 말 현재 한국이 보유한 유일한 국제 메이저 타이틀이기 때문이다. 2016년 2월 벌어졌던 제20회 LG배에서 한국은 강동윤과 박영훈이 결승을 펼쳤고, 강동윤이 2대1로 승리하면서 정상에 올랐었다. 차기 우승자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전년도 우승자가 챔피언으로 인정받는 관례에 따라 강동윤은 아직도 유일한 한국인 세계 정상으로 남아있지만 실질적으론 실관(失冠)한 상태이다. 한국은 최후의 보루로 남았던 LG배마저 놓침으로써 국제무대에서 무관(無冠)으로 우올 한 해를 보내게 됐다.

이밖에 제28회 TV아시아선수권대회도 안타까움과 실망을 동시에 남겼다. TV아시아선수권은 메이저급은 아니지만 한 중 일의 속기(速棋) 타이틀전 우승자들끼리 모여 겨루는 대회여서 꽤 권위 있는 제전이다. 여기서도 한국은 중국과의 우승 다툼에서 실패를 맛보았다. 16세 ‘미래 소년’ 신진서가 결승까지 진출해 큰 기대를 모았지만 마지막 리친청(18)의 벽을 넘지 못 하고 무릎을 꿇은 것. 이 대회는 작년까지 이세돌이 2년 연속 보유해오던 타이틀이었다.

2016년 한국바둑이 올린 실적 중 낭보에 속하는 것은 2개 정도였다. 제20회 LG배서 강동윤이 우승한 것 외에 나머지 하나는 11월 벌어졌던 제7회 궁륭산병성배다. 세계 유일의 여자 개인 타이틀전인 이 무대서 한국 오유진이 우승했다. 결승서 꺾은 상대는 중국 왕천싱. 기보 내용도 완승에 가까울 만큼 통쾌했다. 오유진은 이 대회서 4전 전승을 기록했는데 결승전을 제외한 나머지 3판을 모두 반 집 차로 이겨 더욱 화제가 됐다.

아직 진행 중인 대회들서도 한국 기사들은 중국의 기세에 눌려 힘겨운 행군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 봄 8강까지 추려놓았던 제11회 춘란배가 12월 20일부터 8강전 및 준결승으로 속행된다. 8강에 올라있는 한국 기사는 박영훈과 김지석 2명뿐이다. 이들은 커제 등 중국 기사 6명의 틈바구니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울 각오를 불태우고 있다. 세계 메이저기전 중 가장 막내급 신설대회인 제1회 신아오배는 8강까지만 뽑아놓았는데 내년 봄 속개 예정이다. 이 기전서도 한국은 신진서 1명만 8강에 올라 나머지 일곱 자리를 메운 주최국 중국 기사들 틈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 험난한 일정이다.

올 한해 한국과 중국 기사들 간의 총 전적은 한국 기준 301승 423패, 승률 41.6%로 나타났다. (12월 13일 현재). 이는 모든 국제기전의 공식전 전적을 망라한 것으로 한국기원이 집계한 자료다. 하지만 중국리그를 포함해 본선 이상 성적만 따지면 오히려 한국이 213승 179패(54.3%)로 앞선다. 왜 다른 성적이 나올까. 중국 주최 기전 비율이 높아진 탓이 크기 때문이다. 통합예선 등에서 중국이 넓은 저변(低邊)으로 두터운 선수층이 고루 출전한데 비해 한국은 소수의 정예들로 버티다 보니 전체 승률이 우위를 보인 것으로 분석된다. 어쨌든 중국에게 지나친 공포감으로 위축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자료임엔 분명하다. 2016년의 악몽을 딛고 한국바둑이 다시 희망찬 새해를 열어젖힐 것을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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