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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의 바둑이야기
  흔들릴 듯 흔들리지 않는 박정환
 


한국 바둑을 대표하는 기사는 누가 뭐래도 박정환(23)이다. 정상권 라이벌 이세돌(33)이 버티고 있고, 일곱 살이나 아래인 신진서의 도약이 눈부시지만 아무도 아직 박정환을 넘어서지 못했다. 가장 객관적인 지표인 랭킹이 이를 증명한다. 박정환은 2016년 10월 현재 무려 34개월 연속 톱 랭커자리를 한 번도 내놓지 않고 사수하고 있다. 통산 1위에 오른 회수도 43회로 이세돌의 67회를 향해 무섭게 추격하고 있다. 순위가 바뀌는 것은 결국 시간문제란 게 바둑계의 관측이다.

박정환의 전적을 들여다보면 그라고 해서 매일 이기는 것은 아니란 지극히 평범한 사실과 만나게 된다. 그도 종종 진다. 특히 8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최근 한 달 여 동안 박정환은 중요한 대목에서 무려 4패나 당했다. 그 4패는 모두 국제대회서 기록된 것이다. 8월 12일 제8회 잉씨배 결승 2국서 탕웨이싱에게, 8월 25일 제3회 바이링배 8강전서 천야오예에게 졌다. 9월 들어선 3일 제28회 TV아시아 선수권 준결승서 국내 후배 신진서를 만나 결승 티켓을 내주었다. 9월 6일엔 중국 탄샤오에 패해 제21회 삼성화재배를 패점으로 출발했다.

박정환의 통산 승률은 약 74%선이다. 대략 네 판 중 세 판을 이긴다는 계산이다. 그런 박정환이 최근 한 달 사이 4승 4패, 승률 5할에 머물렀다는 건 그의 위상을 고려할 때 만족스럽지 않다. 그는 그 직전 국내외에서 무려 16연승을 내달렸었다. 특히 자신보다 한참 어린 신진서에게 TV아시아 대회서 당한 패배가 큰 주목을 끌었다. 연간 다승 레이스와 승률 경쟁 등 기록 부문서도 박정환은 1위가 아니다. 그렇다면 혹시 20대 중반에 접어든 그가 정점을 지나 서서히 ‘배터리’ 용량이 줄어가고 있는 신호는 아닐까.

박정환은 지금까지 후지쓰배와 LG배서 한 번씩 모두 두 번 세계 메이저 정상을 정복했다. 세계 무대서 복수(複數) 우승을 거둔 기사는 세계적으로도 손으로 꼽을 만큼 적다. 하지만 만 3년 간 한국바둑 부동의 얼굴로 군림해 온 박정환인지라 그를 일반 기사와 같은 자(尺)로 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선대(先代) 톱스타였던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등에 근접하는 ‘세계 점유도’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요구가 따르는 것도 당연하다. 박정환 스스로 “세계 대회 우승이 당면 목표”라고 말해온 것은 그도 바둑계의 이 같은 여망을 공감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박정환의 ‘세계 정복 프로젝트’는 한 마디로 ‘우려 반, 기대 반’의 흐름을 타고 있다. 올해 열린 국제대회 중 11회 춘란배는 16강, 바이링배는 준준결승, TV아시아 선수권은 4강서 각각 낙마했다. 몽백합배와 바이링배, 삼성화재배 등을 동시 점유해 세계 3관왕으로 군림 중인 19세 중국 기사 커제(柯潔)에 비하면 실적상 열세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박정환은 커제의 벽을 넘지 못하고 세 번째 세계 정상 등극의 꿈도 접어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박정환이 아직 재적(在籍)하고 있는 메이저 세계 기전은 3개다. 잉창치배와 LG배 조선일보기왕전, 그리고 21회 삼성화재배에서 정상 도전의 여지가 남아있다. 4년 마다 열리는 잉씨배에서 박정환은 중국 탕웨이싱과 현재 한창 결승 5번기를 치르는 와중이다. 2국까지 마친 현재 1대1의 팽팽한 접전이 계속되고 있다. 10월 21일부터 중국 상하이에서 열릴 나머지 결승전 3~5국이 끝나면 우승자가 결정된다. 산술적 확률로도 50%이니 박정환의 통산 3회째 세계 정복은 꽤 가까이 와있는 셈이다.


박정환은 LG배에선 신진서와 함께 8강에 올라 11월 4일부터 열릴 8, 4강전을 기다리고 있다. 8강전 상대는 중국의 구리(古力) 9단이다. 올해 LG배 8강은 한국 2명, 중국 6명으로 구성돼 있어 한국 기사들의 분전이 특히 요구된다. 삼성화재배에선 1회전 첫 판 패배 후 패자전서 부활, 16강에 올라있다. 8강 멤버가 우승까지 내달을 수 있는 산술적 확률은 12.5%, 16강의 그것은 6.25%다. 이 3개 대회 각각의 우승 확률을 모두 합하면 68.75%에 달한다. 올해 박정환이 1개 이상의 세계 타이틀을 추가할 확률은 거의 70%에 이르는 셈이다.

이 대목에 이르면 박정환이 좀 더 독주하지 못했다고 나무랄 수 없게 된다. 춘추전국, 백가쟁명의 현 세계 판도에서 이만하면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쏟아 부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세계 3관왕이면서 1인자라고 불리는 커제와 비교해 보자. 커제는 잉씨배와 LG배서 모두 중도 탈락했는데, 그의 발걸음을 잡아챈 상대는 두 기전 모두 박정환이었다. 커제는 대신 제3회 바이링배서 천야오예를 상대로 대회 2연패에 도전할 기회를 잡았다. 이밖에 제11회 춘란배서도 8강 대기 중이다. 그가 보유하고 있는 몽백합배 차기 대회는 내년에 시작된다.

박정환은 기사 생활을 시작한지 만 10년밖에 안 되지만 한국 바둑계에서 누구보다 화려한 황태자의 길을 걸어왔다. 13세 4개월만의 입단부터 주목받았고 16세 7일만의 첫 타이틀 획득(십단전), 국내 최연소 9단 승단(17세 11개월) 등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스포츠 이벤트로 남을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는 이슬아와 함께 금메달 2개의 신화를 남겼다. 기록 면에서도 발군이어서 2012년, 2014년, 2015년 바둑 대상(大賞)서 다승, 승률, 연승 등 3개 부문을 독식했다. 2013년 연승 상 하나가 빠진 2관왕에 머묾으로써 기록 3관왕 4연패(連霸)란 무시무시한 기록을 남기지 못한 것이 바둑계 전체의 아쉬움으로 남을 정도였다.

박정환의 국내 영토는 현재 국수와 바둑왕 등 2개다. 하지만 팬들은 그를 국내보다는 ‘국제용’으로 대하고 싶어 한다. 발군의 기량을 ‘내치(內治)’보다 해외 정벌에서 우선 발휘해달라는 뜻이다. 현재 메이저급 국제기전을 보유한 기사들의 국적별 분포는 LG배(강동윤) 하나를 제외한 잉씨배 몽백합배 춘란배 삼성화재배 바이링배 TV아시아선수권 등 모두가 중국 일색 이다. 박정환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운지 실감난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것은 폭주하는 박정환의 대국 스케줄이다. 국내외를 한 달에도 몇 번씩 드나들다 보니 컨디션 조절이 쉽지 않다. 최근 한 달 사이의 상대적 부진도 이 같은 과밀한 일정 탓이 컸다. 9월 중순 이후에도 박정환 앞에는 한국리그, 중국 갑조리그, 농심배, 삼성화재배 LG배 등으로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진다. 올해 박정환은 시즌 초 자신이 공약했던 대로 세계대회 우승증서를 들고 한 해를 마감할 수 있을까. 필자는 “그렇다”는 쪽에 한 표를 던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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