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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의 바둑이야기
  조남철-김인-서봉수의 공통점은?
 

▲ 추억의 사진한장 - 김인 vs 조남철 71년 국수전 도전4국(운당여관)

어떤 분야건 승부사들이 가진 공통적 꿈은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다. 우승이란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정상(頂上)까지 다달았음을 뜻한다. 그 대회에선 다른 누구보다도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는 성적표다. 바둑의 경우 타이틀을 획득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해방 이후 수 백 명의 프로기사가 태어났지만 한 차례라도 타이틀을 품어보았던 기사는 100명이 채 되지 않을 만큼 난도(難度)가 높다.

한국 바둑역사에서 가장 많은 타이틀을 획득했던 기사는 조훈현이다. 올해 63세인 조9단은 평생 160회에 걸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최다 우승 기록에 해당한다(이하 2016년 8월 10일 현재). 1962년 9살의 나이로 프로가 된 뒤 63년 도일 유학을 떠났고, 10년만인 72년 군 복무를 위해 귀국하면서 그의 본격적인 타이틀 행진이 시작됐다.

조훈현이 따낸 최초의 우승은 1974년 제14기 최고위전이었다(대 김인 3대0). 그는 일본 유학 시절 저단자의 몸으로 발군의 성적을 올렸지만 타이틀을 따지는 못했다. 귀국 때 단위는 5단이었는데, 그가 만약 당시 귀국하지 않았더라면 최고의 바둑 마켓으로 불리던 일본에서도 곧 타이틀 행진을 시작했을 만큼 기량이 무르익은 상태였다. 아무튼 재일 시절을 연마 기간으로 친다면 조훈현의 본격 타이틀 도전은 72년부터 올해까지 44년 간 이뤄졌다. 총 160회 우승은 1년 평균으로 따지면 3.6개에 해당한다.

기전도 생명체를 닮아서 새로 태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또한 모든 프로들이 참가하는 수준 높은 기전이 있는가 하면 특정 부류만 출전 대상으로 하는 소위 제한기전 또는 이벤트 대회도 섞여 있다. 따라서 기사의 타이틀 수를 비교할 때는 전체 숫자만이 아니라 그 함량(含量)을 비교하는 것도 중요하다. 연륜이 오래되고 나이가 많은 예전 기사일수록 우승 기전의 폭이 넓다.

조훈현의 경우 지금은 사라진 이른바 구(舊) 기전서 우승한 것이 107개다. 전체 140개 중 76%에 달한다. 하지만 구 기전이라고 해도 그 시대의 1인자를 가리는 치열한 경쟁 무대에서 따낸 우승인 건 마찬가지이므로 결코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국수전 16회, 명인전 12회, 바둑왕전 11회 등 현재까지 존재하는 기전 성적만 해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화려하다. 140회 중엔 11번의 국제 우승이 포함돼 있으며, 50세 이상 고령자들만 참가하는 시니어기전 우승은 3회 뿐이다.

총 타이틀 수 2위는 이창호(41)로 140회다. 그는 비공식대회 2회를 포함해 총 23차례나 국제 대회서 우승했다. 이 숫자는 아직도 세계 최다기록으로 남아있다. 이창호는 86년 프로가 돼 89년 제8기 바둑왕전에서 첫 우승(대 김수장 2대1)을 따내면서 본격 타이틀 사냥의 길에 들어섰다. 꼭 30년 동안 140회 우승해 1년 평균 4.7번 제패란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지금은 사라진 구 기전서 이창호가 거둔 우승 회수는 총 72회로 전체의 절반가량이다.

조훈현 이창호 두 사제의 우승 회수를 합하면 딱 300개다. 이 숫자는 지금까지 치러졌던 각종 바둑 타이틀전 전체 우승 회수를 몽땅 합한 숫자에 육박한다. 불세출의 사제로 불리는 두 기사의 전성시절 독점도가 얼마나 압도적으로 높았는지 새삼 실감이 간다. 이런 예는 앞으로 세계 바둑계에서 좀체 재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조훈현 이창호를 잇는 통산 타이틀 수 3위는 이세돌(33)이다. 총 48회 우승했는데 그 중 국제대회가 18개이고 구 기전은 5개뿐이어서 순도(?)가 누구보다 높다. 국수 명인 천원 GS칼텍스배 레츠런파크 맥심배 등 정통 기전에 모두 1회 이상 우승해 본 유일한 기사이기도 하다. 이세돌은 95년에 입단해 21년째 프로기사 생활을 보내고 있다. 연간 평균 2.3개꼴로 우승했다.

▲추억의 사진한잔 - 조훈현 vs 서봉수(기록 최철한)

랭킹 4위엔 고인이 된 조남철과 김인(73) 서봉수(63) 등 3명이 함께 올라있다. 저마다 한국 바둑의 한 시대를 이끌면서 중요한 지주 구실을 해온 3명이 같은 우승회수로 한 지점에 올라있다는 건 우연치곤 흥미롭다. 3명의 기사는 똑같이 30회씩 우승했다. 조남철은 50~60년대, 김인은 70년대, 서봉수는 8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다.

한국바둑의 아버지 격인 조남철은 워낙 여명기의 개척자이다 보니 우승 기록도 완전히 베일을 벗지 못한 상황이다. 첫 타이틀조차 불확실하다. 한국기원은 1948년 제1회 조선위기선수권대회서 조남철이 최초의 우승을 거두었다고만 발표했을 뿐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못하고 있다. 당시 시기가 6월이고 국수급 고수 8명이 풀리그를 펼쳐 조남철이 7전 전승으로 우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조남철은 조선위기선수권대회 5기 연패(連覇)를 신호탄으로 국수전 최고위전 패왕전 등에서 독주를 거듭했다. 그의 마지막 타이틀은 1973년 김인과의 도전기서 2대1로 이겨 따낸 최강자전이었다. 1923년생으로 반세기 이상 기사생활을 한 조남철이 독보적 위치를 구축하면서도 평생 타이틀 수가 생각보다 적은 것은 그가 바둑 보급을 위해 동분서주 하던 시절 기전 수가 그만큼 적었기 때문이었다.

김인은 조남철 김인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박정환으로 이어져온 한국 바둑 1인자 계보에서 두 번째 황제로 자리매김 돼있는 인물이다. 이 땅에 현대바둑의 씨를 뿌리며 당대 무적이었던 조남철의 아성을 가장 먼저 깬 혁명아이기도 했다. 30회 우승 중 23개가 구 기전의 이름으로 묻혔지만 한국 바둑 중흥기 김인의 존재는 초기 국수전 6연패(連覇)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상징된다.

서봉수는 동시대 동갑나기 조훈현의 그늘에 내몰리면서도 30회의 우승으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감을 지켜냈다. 그 중엔 19세에 불과하던 1972년 조남철을 꺾고 ‘명인전의 사나이’의 출발점이 됐던 제4기 명인전, 1993년 콧대높던 일본 바둑을 대표한 오다케(大竹英雄)를 메다꽂고 세계 정상에 섰던 제2기 잉창치배 등의 화려한 족적이 포함돼 있다.

최다 타이틀 랭킹은 이들 다음으로 유창혁(24회 우승), 박영훈(19회), 박정환(17회), 최철한(16회)등으로 이어진다. 현재 한국 바둑 1인자로 통하는 박정환이 23세의 나이에도 벌써 최철한 등을 제치고 역대 순위 9위에 진입했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2006년 입단해 불과 10년 만에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정상권 기사층이 워낙 두터워짐으로써 1~2명이 독주하며 타이틀을 축적했던 예전 같은 무더기 우승은 쉽지 않으리란 전망도 나온다.

빼놓을 수 없는 기사가 루이나이웨이(芮乃偉)다. 중국 출신으로 한국서 활동했던 루이는 2011년말 귀국하기 까지 12년 여 동안 한국에서 총 33회의 우승을 기록했다(비공식전 포함). 순위표에 끼워넣을 경우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에 이은 3위가 되며 김인 서봉수 조남철 등은 한 계단씩 뒤로 밀려나게 된다. 하지만 루이의 경우 획득 타이틀의 대부분은 여성들만 출전하는 이른바 제한기전서 거둔 기록이어서 다른 기사들과 수평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루이나이웨이가 남녀가 모두 출전한 무대에서 우승한 경우는 국수전 1회, 맥심배 1회 등 두 차례뿐이었다. 18회에 달한 국제대회 우승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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