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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의 바둑이야기
  가열돼가는 최정-위즈잉 전쟁
 


여자바둑은 일단 ‘선수’들의 저변에서 남성과 비교가 안 된다. 전체적인 실력도 남녀 간에 아직 차이가 엄존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팬들은 남자 최상위기사들과 당당하게 맞설 ‘여전사’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고, 여성기사들 자신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부단히 뛰고 있다. 이런 팬들의 기대에 가장 가까이 와 있는 기사가 한국의 최정과 중국의 위즈잉(於之瑩) 2명이다.

세계 바둑역사에서 역대 최강의 여성기사가 루이나이웨이(芮乃偉)라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녀는 99년 3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13년 여 동안 한국에서 따낸 타이틀 수만 33개에 달했다. 그 중엔 국수전과 맥심배 처럼 남녀 혼성기전도 포함됐었다. 중국에서 거둔 우승은 이와 별개여서 따로 계산해야 한다. 루이나이웨이는 제2회 잉창치배(92년) 때 세계 4강까지 올랐다. 앞으로 여간해서 깨지기 힘든 ‘신화’로 남아있다.

하지만 루이의 나이도 올해로 어언 53세에 이르렀다. 전성기를 지나 뚜렷이 하강 커브를 그리고 있는 연령대다. 6월 중국랭킹에서 그녀의 위치는 103위. 위즈잉(68위) 리허(李赫 96위)에 이어 여자기사 중 3위에 머물고 있다. 왕천싱(王晨星) 쑹룽후이(宋容彗) 루자(魯佳) 차오요우인(曹又尹) 등이 어지럽게 각축하던 중국 여자 바둑계는 약 3년 전부터 97년생 위즈잉에 의해 평정돼가는 분위기다.

한국 쪽도 흐름이 비슷하다. 윤영선을 거쳐 루이나이웨이의 오랜 독재 기간을 보낸 뒤 잠시 조혜연-박지은의 쌍두체제가 찾아왔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후배인 최정이 곧바로 최고 통치권을 틀어쥐었다. 2013년 12월 이후 31개월째 연속 국내 여성기사 랭킹 1위를 고수 중이다. 여류 명인을 5기 연패(連霸)하는 등 타이틀 점유율도 발군이다.

최정의 6월 한국 랭킹은 56위. 역대 개인 최고 순위인 동시에 최근 몇 년간 여성기사가 기록한 가장 높은 랭킹이다. 최정의 뒤로는 오유진 김혜민 박지은 박지연의 순인데 모두 100위권 밖이다. 최정이 군계일학 같은 존재임이 여기서도 확인된다. 그녀는 올해 국제대회인 LG배 조선일보기왕전 통합예선 역사에서 여성으론 처음 본선에 올랐고, 첫 판을 이겨 16강까지 진격했다. 한국바둑리그서도 홍일점으로 존재 가치를 빛내고 있다.

최정과 위즈잉은 과연 남성의 벽도 넘을 수 있을까. 아직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최정이 이번 LG배에서 꺾은 저우허시와 판윈러는 각각 중국랭킹 23위와 18위에 랭크된 강타자들이다. 중국 기사 층은 워낙 두터워서, 세계 최정상까지 올랐던 판팅위(范廷鈺) 같은 기사가 15위에 처져있을 정도다. 최정은 국내 무대서도 남성 맹장들을 심심치 않게 혼내주고 있다.

위즈잉의 활약도 무섭다. 그녀의 최고 ‘대첩’은 2015년 삼성화재배서 목진석과 최철한을 연파하고 세계 16강에 오른 것과, 2014년 초 중국 여성 기사로는 처음으로 신인왕에 오른 2개가 꼽힌다. 신인왕전 결승서 위즈잉은 세계 4강(제1회 바이링배)까지 올랐던 중국의 미래 병기 리친청(李欽誠)을 2대1로 눕히는 이변을 연출했다. 당시 중국랭킹 35위였던 98년생 리친청은 그 때 받은 충격 탓인지 그 이후 기대보다 못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되니 세계 바둑 여제(女帝) 자리는 자연스럽게 최정과 위즈잉의 싸움으로 좁혀지게 됐다. 두 기사는 개인전에선 말 할 것도 없고, 단체전에서도 거의 언제나 소속국의 우승을 결정하는 판에서 대좌하게 돼버렸다. 동료 기사들이 아무리 잘 하거나 또는 못 해도, 결국은 최종전에서 만난 이들 둘의 대국 승리 팀이 단체 우승을 가져가게 되더란 뜻이다. 가장 최근(6월 10일) 끝난 제6회 황룡사쌍등배 세계여자단체전이 좋은 예다.

누가 더 센가. 일단 지금까지의 통산 상대전적에선 위즈잉이 11승 6패로 앞선다. 그런데 승패 사이클이 묘하다. 2013년 제3회 황룡사쌍등배에서 처음 상견례 자리를 가져 최정이 승리했다. 하지만 위즈잉은 이후 1년 반 동안 최정에게 무려 6연승을 거두면서 ‘천적’으로 떠올랐다. 2015년 4월부터는 다시 최정의 반격이 시작돼 4연승을 기록, 5승 6패로 바짝 따라붙었다. 대등한 관계로 접어드는가 할 때 이번엔 다시 위즈잉이 질주했다. 6회 황룡사쌍등배 한 중 최종전서 승리하면서 위즈잉은 4연승을 추가하며 또 한 번 최정과의 거리를 벌렸다.

최정은 96년, 위즈잉은 97년 생이다. 갓 스무 살 안팎으로 정작 둘 간의 경쟁은 이제부터다. 두 기사 모두 지금도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 추세여서 앞으로의 승패는 누구도 점칠 수 없다. 물론 세계 바둑 여왕의 자리다툼이 이들 두 기사만의 전유물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현 시점에서 이들은 발군이다. 참고로 최정은 중국의 실질적 2인자 왕천싱에게 2승 1패, 한국 여자랭킹 2위 오유진에게 10승 1패로 앞서 있다. 위즈잉은 오유진에게도 3승 2패로 리드 중이다.

최정과 위즈잉은 2년 동안 한국 여자바둑리그에서 한 팀 동료로 활약했다. 올해 시즌엔 이들 두 쌍두마차의 압도적 화력으로 통합우승을 일구어냈다. 둘은 한솥밥을 먹으며 천하에 둘도 없는 라이벌이자 동료라는 기묘한 관계가 돼버렸다. 애증이 교차한다는 얘기인데, 마음이 더 여리고 착한 최정이 맞대결 때 다소 손해(?)를 본 결과로 나타난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차분하고 냉정한 위즈잉과 달리 최정은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기분을 많이 타는 편이다.

여성 바둑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단순히 국력 경쟁 차원만이 아니고 그 나라 사회와 가정에서 바둑에 대한 분위기가 여성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열정적 여성 기사 1명이 웬만한 남성 기사 여러 명보다 더 소중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위치가 최정과 위즈잉 정도라면 그 비중은 더 말 할 게 없다. 지금으로선 세계 여자바둑 전체 판도가 두 사람 손에 달려있다고 말해 과언이 아니다.

연승과 연패 사이클에서 보듯 이 두 여걸들 간의 승부는 분위기나 기세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까지 나타난 성적표가 실력을 그대로 반영한 자료는 아니란 뜻이다. 남성 프로 고수들도 최정이 심리 싸움에서 잠시 밀리고 있는 것일 뿐 실력은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둘 중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 그리고 그들 둘의 공동 목표인 ‘남성 수준 진입’의 소망을 누가 먼저 이룰지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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