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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의 바둑이야기
  알파고, 이대로 작별인가
 

이세돌과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세기의 대결’이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한지도 한 달 여가 훌쩍 지났다. 아직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두뇌를 뛰어넘기는 시기상조라고 누구나 생각했었고, 그래서 정 반대로 나타난 결과에 대해 모두가 경악했었다. 1대4로 패한 과정에서 이세돌이 조금만 발상을 바꿔 임했으면 이길 수도 있었으리란 아쉬움도 남아있다. 그래서 세계, 특히 바둑계에선 알파고의 다음 ‘행마‘에 대해 아직도 큰 기대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중이다.

하지만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산하 딥마인드는 이와 관련해 아무런 발표가 없다. 중국의 10대 기린아 커제나 한국의 톱랭커 박정환 등과 또 한 번의 빅매치를 기대하고 있던 팬들로선 좀 김이 빠지는 상황이다. 알파고가 기존 바둑계에 던진 충격은 실로 대단해서, 알파고 이전과 알파고 이후의 역사로 나뉘게 됐다는 말까지 나왔다. 인간의 가치관과 판단력에만 근거해왔던 패러다임이 알파고를 통해 혁명을 맞을 수 있다는 바둑계의 기대는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알파고와 다양한 형태의 경쟁을 통해 흥행과 기술 향상 2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게 바둑인들과 팬들의 기대다.

인간 측의 이 같은 바람은 슈퍼챌린지 매치 도중에도 계속 노출됐었다. 알파고에 대한 다른 ‘도전‘들이 꾸준히 제기됐다는 뜻이다. 자타 공인의 세계 1인자 커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알파고와의 대결을 당위(當爲)로 몰아갔다.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몰리던 기간엔 한국기원 명의로 구글에게 ’재대결‘을 요청했다는 뉴스가 나와 잠시 혼란을 빚기도 했다. 한국기원의 공식 부인으로 해프닝 처리되기는 했지만, 국내 젊은 유망주들은 실제로 이런 건의를 했고, 심지어 국내의 일부 대기업이 후원을 약속했다는 이야기까지도 떠돌았었다.

딥마인드의 향후 알파고 운용 방안에 바둑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대신 스타크래프트2가 유력한 다음 도전 상대로 떠오르는 중이다. 스타크래프트2의 블리자드 팀 모튼 수석 프로듀서는 최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월드 챔피언쉽 시리즈 상하이 대회 현장에서 가진 중국 언론들과의 회견을 통해 “현재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 측과 접촉 중”이라고 밝혔다. 블리자드 수석 프로듀서는 알파고와 스타크래프트 간의 대결 가능성을 높이 보면서 “다만 아직은 비즈니스 성사를 위한 차원일 뿐, 경기 규칙 등 세부 내용은 정해진 게 없다”고 덧붙였다. 구글은 지난 3월 이세돌과의 대결을 마친 뒤 다음 도전 종목이 스타크래프트가 될 것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알파고가 다른 프로 고수와의 대결 등, 바둑으로 또 다른 기획을 준비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졌다. 이세돌은 현역 세계 최강은 아닐 수 있지만 구글이 당초 발표했던 대로 “최근 10년 사이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던 인류 바둑 대표”로 챌린지 매치에 불러들였던 인물이다. 이런 상징적인 기사를 꺾은 마당에 구글이 더 이상 바둑계에 미련을 갖고 다른 상대를 물색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인간 대표와 싸워 만에 하나 지기라도 하는 날엔 그간의 성과가 물거품이 된다. 이세돌 본인도 알파고전이 끝나고 제주도에 가족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날 가진 인터뷰에서 “박정환 등 다른 기사들이 알파고와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만, 딥마인드가 바둑 행사를 또 할지에 대해선 솔직히 회의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알파고에 앞서 먼저 인간 두뇌를 꺾었던 ‘AI 형님‘이 있다. 바로 1997년 당시 세계 체스챔피언이던 개리 카스파로프에게 승리한 IBM 슈퍼컴퓨터 딥블루다. 2004년 미국의 유명 TV퀴즈쇼 ’제퍼디‘를 통해 인간 고수들을 무릎 꿇렸던 IBM의 ’왓슨‘도 대화형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알파고의 선배 격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뒤엔 같은 분야의 또 다른 상대를 기다리며 머뭇거린 적이 없다는 점이다. 바쁘고 스피디하며 변화무쌍한 현대 사회에서 이미 정복한 분야의 다른 도전자를 또 상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딥블루는 체스로 인간 제압하라는 미션을 완벽히 수행하자 컴퓨터 시스팀 전체가 폐기(廢棄)처분 됐다.

그들 IT그룹들도 목표에 이를 때까지는 하나같이 집요하고 필사적이었다. 딥블루 이전 딥소트(Deep Thought)가 체스 세계 챔프 ‘저격수’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85년이었다. 카네기멜론대학이 개발한 딥소트는 1989년 카스파로프에게 도전했지만 완패했다. IBM은 이후 딥소트 개발팀을 스카웃, 컴퓨터 성능을 크게 개선해 1997년 마침내 카스파로프를 꺾었다. 알파고 역시 2년 전 개발 단계 때의 실력은 보잘 것 없었으나 눈부신 수준의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단계적으로 도전 상대를 높여간 끝에 ‘대어’를 낚았다. 2015년 말 유럽 챔피언 판후이와의 전초전에서 알파고는 공식전서는 5대0으로 완승했지만 비공식전(속기)에선 3대2로 신승하는 정도의 실력에 불과했었다.

구글은 자신들의 목표가 고작(?) 바둑 한 곳에서의 승리에만 있지 않다는 걸 이미 몇 차례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올해 초 이세돌과의 대결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딥마인드 CEO 데미스 허사비스는 “알파고는 바둑에만 국한되지 않는 범용(汎用) 인공지능”이란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인공지능 시스템의 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경우 난치병 치료, 재난 구조, 기후 변화 대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 발전에 이바지할 것이란 얘기였다. 이런 원대한 계획을 천명해 온 딥마인드가 이 상황에서 또 다른 바둑 이벤트를 기획하고 시간과 경비를 투자하려 할지 장담하기 힘들다.

알파고가 바둑의 이세돌을 디딤돌로 인간을 정복하자 세계 과학계 일각에선 “알파고와 왓슨을 대결시켜 보자”는 제안이 나왔었다. 알파고와 왓슨은 똑같이 인공지능이긴 하지만 구조와 알고리즘이 판이해 직접 대결은 불가능하다. 주목할 부문은 이들의 경쟁의식, 그리고 지향점이다. 딥블루와 왓슨으로 인공지능 시대를 선도해온 IBM측은 이미 의료, 법률,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는 50여개의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갖추고 있다고 자랑한다. API는 운영체제와 응용프로그램 사이의 통신에 사용되는 언어를 뜻하는데, 현재의 알파고는 아직 바둑이란 단 하나의 API 상태에서 더 발걸음을 떼지 못한 상태다.

딥블루도 그랬듯 알파고도 절세의 프로 고수들에 의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아니다. 물론 두 프로그램 모두 인간을 격파하기 직전 마무리 단계 때는 인간 고수들과의 스파링을 거쳤다. 하지만 체스와 바둑의 수(手)가 그리 높지 않은 과학자들의 힘만으로 개발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인간 최고수들마저 뛰어넘었다는 사실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어찌 보면 앞으로 인간 대 컴퓨터의 반상(盤上) 대결이 무의미하다는 느낌을 주기에 족하다. 인간 수(手)의 발전 속도가 개미 걸음일 때 공룡같은 인공지능이 성큼성큼 걷을 것이 분명하다면, 이번 챌린지 매치로 경쟁은 끝난 셈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기계의 대결을 더 지속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바둑은 인공지능 개발 업체들에게 중요한 ‘정박(碇泊)’항으로 여겨져 왔다. 구글 외에 페이스북, IBM과 기타 여러 나라 대기업들도 이에 포함된다. 이들간의 경쟁은 일단 구글이 현격한 차이의 선두주자임이 입증됐다. 알파고를 기반으로 크게 성가를 높인 딥마인드(구글)이 바둑에 계속 머물며 바둑의 실체 규명에 앞장서 줄 가능성은 일단 희박해 보인다.

IBM 왓슨 연구소엔 1997년 카스파로프를 꺾고 폐기된 인공지능 체스 프로그램 딥블루의 서버 부분이 전시돼 있다. 인류사적 업적을 성취한 직후 한낱 고철(古鐵)로 전락한 채 유물로 취급된 것이다. 전 세계를 흥분과 경악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알파고가 곧바로 딥블루의 신세로 전락한다면, 바둑 동네에서 ‘인공’ 아닌 ‘인간’ 지능의 존재는 너무도 처량해 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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