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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의 바둑이야기
  알파고 포함한 4강 리그가 열린다면
 

바둑 역사상 이처럼 전세계를 들썩이게 만든 행사는 일찍이 없었다.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서울 포시즌스호텔서 열린 이세돌 대 알파고 5번기 이야기다. 대결 기간 동안 가는 곳마다 바둑 이야기가 꽃을 피웠다. 지하철을 타도 휴대폰 앱으로 이 대국을 관전하거나 관련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TV를 켜면 온통 바둑 중계 또는 뉴스뿐이었다. 평소에는 단수가 뭔지, 축이 뭔지 바둑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두 모니터 앞에 진을 쳤다. 마지막 5국 때 실황 중계에 나선 채널 수는 공중파, 종편을 포함해 무려 14개에 이르렀다.

구글 딥마인드 인공지능 대국 프로그램 알파고는 뜻밖에도 인간 최고수 이세돌을 4대1이라는 일방적 스코어로 따돌리고 이번 대결서 승리했다. 바둑 좀 안다는 동양권 고수들의 예상이 거의 틀린 반면, 전혀 바둑을 모르거나 약한 서양인들이 결과를 맞췄다. 이러한 승부 결과 또한 바둑을 동양 문화의 상징적 존재로 자랑해온 한 중 일 국민들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충격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5000년 동양 문화가 응축돼 있는 바둑 게임에서 태어난 지 2년에 불과한, 숨도 쉬지 않고 화장실도 가지 않는 기계에게 속절없이 무너졌다. 바둑에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한 중 일 3개국 바둑 팬들로선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다. 그래서 동양권의 수많은 팬들은 다시 한 번 검증을 열망하는 분위기다. 이름은 ‘재대결’, ‘2차전’, ‘리벤지 매치’, 어느 것이라도 좋다.

이미 비슷한 보도가 한 차례 나갔다.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0대3으로 몰려난 시점에서 한국기원이 구글 측에게 “한 번 더 대결하자”고 제안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우승 상금 11억원을 이번에는 한국 측이 부담하며 재원도 이미 확보됐다는 소문이 뒤따랐다. 한국기원 측은 이후 “젊은 우리 기사들이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해 이들을 중심으로 알파고와 재대결 가능성을 타진해 본 것”이라며 의미를 약간 축소했었다. 어쨌든 제안한 것은 분명한 만큼 구글 쪽에서 가부간 회답이 올 것이다.

그러나 알파고가 만약 최정상권 상대와의 2차전에 나설 요량이라면 그 상대는 한국의 젊은 기사들이 아니라 중국 커제(柯洁) 9단이 될 공산이 크다. 명실공한 세계 톱스타이기 때문이다. 만 19세에 불과한 나이에도 그가 현재 지니고 있는 세계 타이틀만 3개다. 중국 랭킹에서도 6개월 연속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구글이 알파고에게 또 한 명의 인간 스타와 맞서게 한다면 이세돌보다 강한 기사라야 명분이 있다. 세계 1위를 넘어야 진정한 인간 제압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중국 팬들뿐 아니라 커제 스스로 이같은 배경을 깔고 연일 “알파고 나와라”며 시위 중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박정환에게 눈을 돌리고 있다. 그가 알파고와 맞설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올까 몹시 궁금하다. 박정환은 28개월 동안 연속 국내 톱 랭커로 군림해 왔다. 그 가간 이세돌은 2위와 3위를 왔다갔다 했다. 알파고와의 대결서 분패한 이후 이세돌은 “인간이 절대 넘지 못할 넘사벽은 아니다. 박정환 같은 다른 기사가 알파고와 겨룬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패배에 대한 아쉬움을 에둘러 표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진짜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한국 1위 박정환과 알파고와의 대결은 한국민들로선 꼭 보고 싶은 카드다.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패하고도 한국 팬들이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1위는 따로 있다”는 명분 때문이었다.

이런 가운데 이번엔 일본기원이 자국 최고수 이야마 유타(井山裕太)가 알파고와 싸우게 해달라고 공개 도전장을 던졌다. 이야마라면 일본 메이저 타이틀 7개 중 6개를 차지하고 있는 엄청난 ‘대주주’다. 일본 바둑이 이야마 1명으로 대표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다. 다른 나라의 예를 보아도 이 같은 독점율은 전성기 때의 조훈현 외엔 없다. 이런 1인자와 인공지능 괴물 알파고 간의 승부가 벌어진다면 침체한 일본 바둑계에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느 한 쪽의 승패도 장담할 수 없다.

일각에선 구글이 세계 최강자급 바둑 고수를 꺾음으로써 알파고의 바둑 임무는 끝나고, 당초 목적이었던 의료, 재난, 기후 등의 용도에 투입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바둑 행사를 계속하지 않으리란 것이다.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엿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구글 쪽의 ‘수읽기’가 틀렸다. 그들의 ‘자식뻘’인 알파고의 수준보다 훨씬 못하다.

이번 이세돌 대 알파고 간의 이벤트는 서양의 과학 문명과 동양의 정신문화의 결합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 둘이 완벽한 화학적 합일(合一)을 이루려면 이번 이세돌-알파고 전 같은 행사를 계속 펼치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해야 바둑 수가 낮은 서구인들 사이에선 바둑 실력을 높이려는 열풍이 불 것이고, 동양인들은 놀라운 서구 과학기술을 흡수하려는 노력을 쏟을 것이다. 바둑으로 세계를 하나로 만들면서 인류의 삶을 끌어올릴 수 있다.

한국의 박정환, 중국의 커제, 일본의 이야마는 동양과 바둑이란 키워드로 연결된다. 게다가. 각국을 대표하는 1위 기사들인만큼 실력도 막강해 함부로 우열을 논할 수 없다. 흥행 요인도 상당하다는 이야기다. 이들 셋의 틈에 알파고가 합류해 대결장을 만든다면 정말 환상적인 무대가 만들어질 것이다. 동양 인간 스타와 서양 과학 괴물이 한데 어울려 우열을 가리는 광경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대결 방식은 리그도 좋고 토너먼트도 좋다. 경우에 따라선 편 바둑, 즉 페어 경기나 상담기로 좋다. 그 과정에서 최신 인공지능의 강점과 약점이 드러날 것이다. 인간은 그런 인공지능을 통해 바둑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이것이야 말로 구글이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키워온 이유가 아니던가. 인간과 기계는 앞으로 한동안 한데 섞여 우열을 겨루고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가야 한다. LG배나 삼성화재배, 잉씨배 같은 인간 세계대회에 몇 종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끼어들어 대회를 하는 모습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거친 입과 무례한 언행으로 종종 비난받는 하이틴 스타 커제와, 일본 7개 메이저 전관왕 도전에 또 한 번 나서는 이야마, 그리고 한국 부동의 에이스로 자리 잡은 박정환의 3각 대결만으로도 눈부신데, 여기에 알파고가 포함된 대회를 기다려본다. 구글이 만약 손을 뺀다면 다른 거대 IT기업의 후원을 기대할 수도 있다. 인공지능 고수 만들기 경쟁에 나섰다가 구글에게 한 발 밀린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같은 대기업이 변형된 방식으로 바둑을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알파고가 범용 인공지능이므로 바둑에서의 임무는 끝내고 다른 분야에 활용하기로 구글이 결정한다면 바둑 쪽으로선 매우 아쉬운 결정이 될 것이다. 바둑 동네로 볼 때는 알파고가 퇴역하지 말고 남아서 계속 바둑의 신비를 규명하는 역할을 도와야 한다. 19년 전 체스 세계 챔피언 개리 카스파로프를 누른 슈퍼 컴퓨터 딥블루를 IBM이 폐기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결정이었다. 구글이 알파고에게 바둑과 관련된 2차 지령을 내렸다는 뉴스를 기다려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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