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청소년바둑선수권대회라고 있다. 바둑에 관심을 가진 국가들이 매년 여름 철 한 자리에 모여 어린 선수들의 기량을 겨루는 행사다. 1984년 시작돼 올해로 26회째 대회를 마쳤으니 벌써 4반세기가 넘는 연륜을 쌓았다.

이 행사를 창설하고 운영해 온 사람은 잉창치(應昌期)씨다. 중국 출신으로 대만에서 대 재벌이 된 그는 ‘전만법’이란 독자적 바둑 규칙을 만들었고, 그 규칙을 적용하는 세계 최대기전 잉씨배를 창설한 바둑 광이다. 1997년 타계한 잉창치 씨의 숱한 업적 중에서도 이 대회를 창설한 공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미래의 주역들을 발굴하고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세계바둑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대회는 초창기 3년 간 대만에서만 거행됐으나 이후 전세계를 돌아가며 치러지고 있다. 88년 5회까지는 주니어(12세 이하) 대회로만 열리다가 89년 싱가포르 대회(6회)부터는 시니어부(18세 이하)가 신설됐다.
26년 간 배출된 역대 우승, 준우승자 명단을 보면 이 대회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어떠한 기능을 해 왔는지 한 눈에 확인된다. 현재 자기 나라 또는 세계를 무대로 펄펄 날고 있는 스타들의 상당수가 이 대회를 거쳤다.

중국 간판 중 하나인 창하오(常昊)는 88년 5회 대회 주니어부 챔피언 출신이다. 박영훈과 이영구는 96년 13회 및 97년 14 대회 주니어부를 제패했다. 허영호(2000년 17회 시니어부) 강동윤(2000년 17회 주니어부) 강유택(2003년 20회 주니어부) 박정환(2004년 21회 주니어부) 모두 이 대회 우승자 출신이다.
중국도 창하오 이후 많은 스타급 우승자들을 배출했다. 92년 제9회 시니어부의 저우허양(周鶴洋)을 거쳐 현역 중국 1인자인 구리(古力)은 94년 제11회 대회 주니어부 결승서 한국 조한승을 물리치고 우승했다. 이밖에도 왕레이(王磊) 황이중(黃奕中) 후야오위(胡耀宇) 펑첸(彭荃) 리캉(李康) 저우루이양(周睿羊) 천야오예(陳耀燁) 구링이(古靈益) 등이 줄을 이어 우승자 명단에 이름을 새겼다.
한국은 김영환이 84년 원년대회 석권으로 초대 우승의 영광을 차지한 데 이어 공병주와 이상훈이 2, 3회 대회를 제패, 대회 초창기 3연패(連覇)의 위업을 쌓았다. 김만수 안조영 안달훈도 한국의 이 대회 금메달리스트 출신이다. 이세돌은 92년 제9회 대회 주니어부에 출전해 대만 린즈한(林至涵)에게 분패, 준우승자로 기록됐다. 역대 입상자 중 세계를 제패한 기사가 창하오 이세돌 박영훈 구리 강동윤 등 5명이나 된다. 자국 타이틀을 따 낸 기사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

대회는 전체적으로 한국과 중국의 싸움터였으며 양국의 전적도 팽팽했다. 양국 외에 ‘금메달’을 수확한 유일한 나라가 대만이었다. 특히 샤셴위(夏銜譽)란 소년은 6회 때 주니어부서 한국 맹지민을, 7회 때는 시니어부에 출전해 김만수를 각각 꺾고 두 차례 우승해 잉창치 영감의 입을 찢어지게 했다. 샤셴위는 그러나 이후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등 한 때의 노력에도 불구, 그 이후 프로명단에 보이지 않아 바둑을 접은 것으로 짐작된다.
역대 대회서 시니어와 주니어 양대 부분을 모두 우승해 본 기사는 샤셴위 외에 중국 리캉을 포함해 단 2명뿐이다. 금 1, 은 1개 획득 기사로는 한국 김만수와 나현(미 입단), 2차례 준우승은 대만 저우쥔쉰(周俊勳)과 천스위안(陳詩淵) 등이 있다. 한 중 양국의 치열한 패권다툼 와중에 대만이 유일하게 종종 브레이크를 걸어온 셈이었다.

이런 가운데 올해 대회가 지난 8월 11일부터 15일까지 중국 산시(山西)성 창즈(長治)에서 벌어졌다. 세계 13개국 대표 20명(시니어 11명, 주니어 9명)이 출전했다. 결과는 2개 부문 모두 중국이 우승하고 한국이 준우승하는 것으로 종료됐다.
중국의 시니어 대표 리쉔하오(李軒豪)는 2단, 주니어 양딩신(楊鼎新)은 초단으로 둘 다 현역 프로기사다. 이에 반해 한국에선 올해도 예년처럼 연구생들이 출전했다. 시니어 대표 박민규 군은 3조, 주니어 대표 신민준 군은 8조 소속이다. 두 한국대표는 각각 15세, 10세로 연령 상한선인 18세와 12세보다 2년 안팎씩 어렸다.

중국의 프로는 4단 이상이 돼야 진짜 프로란 얘기가 있다. 중국은 유망 소년들을 대성으로 이끄는 방법으로 기량이 다소 설익은 나이에 조기 입단시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제도권’서 부대끼다 보면 아마추어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 훨씬 빨리 진보한다는 논리다. 프로 초~3단을 그 과정으로 보는 것. 따라서 이번 중국 출전자들은 프로라곤 하지만 국내 입단대회를 통과한 같은 또래 한국 소년들에 비해선 다소 약한 실력으로 추정된다.
반면 한국은 중국처럼 어린 나이라고 입단에 혜택을 주는 제도는 없다. 똑같이 경쟁해서 일정 숫자 안에 들어야만 프로가 되며 연구생 제도는 그 텃밭이다. 연구생들에겐 일반 대회 출전이 봉쇄돼 있다. 게다가 세계청소년대회는 훗날 출세의 보증수표로 여겨지고 있어 이 대회 대표를 뽑는 연구생 선발전은 상당한 열기 속에 진행된다.

한국과 중국의 대표 선발 방식은 어느 쪽이 옳을까. 명분만 따지자면 중국은 어린 아마추어 소년들의 대회를 통해 내일의 주역을 점쳐본다는 대회 취지를 거스르고 있다. 일단 프로 호칭을 부여했으면 출전시키지 않는 것이 정답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찌됐건 그들은 이런 시스템으로 유망선수의 조기 발굴과 육성, 자신감 고취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채고 있다. 이번 대회가 끝난 시점에서 중국은 역대 통산 우승자 23명, 준우승자 14명을 배출해 한국(우승 21. 준우승 18명)을 따돌리기 시작했다. 이런 추세라면 이번 대회를 분기점으로 중국이 독주할 가능성이 꽤 높아 보인다.
한국도 프로를 파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미 입단 유망주 파견이란 원칙을 져버리지 않고서도 중국에 밀리지 않을 대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을 맞았다. 앞에서도 살펴 보았듯 이 대회는 미래 세계바둑 판도를 점검할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거울이다.

일본의 사례가 좋은 타산지석이 될 것 같다. 26년 간 일본이 이 대회서 거둔 성적은 우승 없이 고작 준우승 4회뿐이었다. 우승 3회, 준우승 9회의 대만보다도 훨씬 뒤처지는 초라한 성적표다. 이 대회 출범 초기만 해도 일본은 세계 바둑의 중심 시장이었으며 경기력, 흥행력, 저변 모두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했었다. 세계청소년대회의 초라한 성적은 그들이 그 같은 인프라에 자만해 유망 청소년 양성과 성적향상에 전혀 노력하지 않은 결과다. 그리고 그것이 일본 바둑의 전반적 몰락으로 이어졌다.
한국 바둑이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세계 최강을 유지하기 위해선 청소년 육성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입단대회와 연구생 운영 방식 등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 중국식 합동 훈련 등 연구할 과제가 많다. 7년 만에 시니어와 주니어 모두를 중국에게 내준 이번 세계청소년대회 결과를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