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회오리에 휘말렸던 2007년도 저물어간다. 바둑계 역시 숱한 화제 속에 많은 스타들을 배출해냈다. 2007년 한 해를 빛낸 바둑계 뉴스 메이커들을 총 집합시켜 보자.

▥이세돌 9단

이세돌은 지난 해 연말까지만 해도 이창호와 더불어 ‘1인자 논쟁’의 대상이었으나 올 들어 이창호 지지론자들을 완전히 잠재웠다. 국내외에서 눈이 부실 정도의 맹활약을 펼치며 무려 7관왕(이하 11월 30일 현재)으로 군림 중이다. 이창호가 현재 보유 중인 타이틀은 왕위 및 마이너 국제대회인 중환배 등 2개뿐.

이세돌은 2007년 벽두 도요타덴소배를 품에 안으며 기세 좋게 새 해를 열어젖혔다. 국제무대서의 그의 활약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세계 최고 기전인 LG배에서도 결승에 진격, 한상훈과 내년 2월 패권 다툼을 앞두고 있다. 삼성화재배 역시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가 내년 1월 박영훈과 정상을 겨룰 예정이다. 국제 속기(速棋) 타이틀인 TV아시아선수권전서도 우승했다.

국내무대서는 맥심배 물가정보배를 지키며 각각 3연패(連覇), 2연패를 달성했다. 국내 최대상금의 명인전도 새로 품에 넣었고, GS칼텍스배와 국수전 결승(도전기)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 우승이 유력하다. 이 밖에 기성전과 원익배 등에서도 순항을 계속 중이다. 이런 페이스라면 2008년엔 10관왕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총 전적도 8할 대 승률을 유지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세돌이 올해 수성(守成)에 실패한 기전은 바둑왕전 정도.

▥박영훈 9단

22세 ‘송아지 띠’의 선두 주자인 박영훈의 올 한 해 성적도 가공스럽다. 그는 지난 4월 같은 ‘송아지 트리오’의 일원인 동갑 라이벌 최철한이 도전해 온 기성전서 승리, 타이틀 3연패(連覇)를 이뤘고 이를 기반으로 시즌 내내 호조를 이어왔다. GS칼텍스 배에선 뭇 강호들을 제치고 전승으로 도전권을 따내 기염을 토했다.

GS칼텍스 배 현 타이틀 보유자인 이세돌과의 도전기서는 현재 0대2로 뒤져있지만 역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는 또 9단들만의 경연장인 맥심배에선 이세돌을 따돌리고 4강에 안착,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왕위전과 국수전서는 도전 무대에 서는 데는 실패했어도 각각 4강에 오르며 안정된 기량을 과시했다.

박영훈의 2007년은 국제무대에서 국내 이상으로 빛났다. 7월 이창호 9단과 겨룬 제20회 후지쓰배 결승서 쾌승, 2004년 17회 때에 이어 3년 만에 타이틀을 탈환했다. 또 연말엔 세계 최강자 중 1명으로 꼽히는 중국 구리(古力)와 사투 끝에 2대1로 역전승함으로써 제12회 삼성화재배 결승에 도약했다. 2008년 1월 펼쳐질 이세돌과의 결승 3번기는 향후 세계 판도를 가늠할 중요한 일전. 박영훈은 이밖에 농심배서 맹활약했으며 중환배에서도 4강에 진입했다. 이런 활약 속에 국내 랭킹도 종전 4위에서 3위로 뛰어올랐다.

▥목진석 9단

목진석은 80년 생으로 올해 27세. 이창호보다는 5살이 적고, 청년 층의 정점(頂點)인 이세돌 보다는 3살이 많다. 가장 활발한 현역 연령대를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로 본다면 목 9단은 그 중간점에 위치한다. 고참의 연륜이나 관록, 그리고 신예의 패기와 체력을 모두 갖추었다는 얘기가 가능해진다.

이를 방증하듯 목진석은 올해 내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시즌 초반부터 다승 부문서 치고 나간 결과 11월 25일 현재 무려 84승(26패)을 기록 중이다. 국내 바둑계의 1년 간 최다승 기록은 이창호가 1993년 작성한 90승(19패). 목진석이 한 달 이상 남은 기간 동안 7승 이상을 따 낼 가능성은 제법 크다. 연간 최다승 기록이 목진석에 의해 경신을 앞두고 있다는 뜻이다.

목 9단이 현재 소화한 올 한 해 대국 수는 110국. 이창호가 89년 작성했던 종전 연간 최다대국 수 111국은 이미 사실상 경신된 상황이다. 하지만 목진석은 이 같은 맹활약에도 불구, 타이틀 성(城)에 접근하는 면에선 풍작을 이뤄내지 못했다. 결승 진출자 2명을 뽑는 명인전 리그에서 동률 재대국 끝에 2위 자리를 놓치고 3위에 머무는 등 불운이 겹쳤다. 아직 ‘살아있는’ 기성전과 맥심배 두 개 타이틀전에서 어떤 수확을 거두느냐에 2007년 ‘작황(作況)’이 결정될 전망.

▥한상훈 초단

한상훈은 올 한 해 2개의 국제 바둑역사를 새로 썼다. 하나는 최단기 국제대회 본선 진출. 프로 데뷔 61일 만에 세계대회 본 무대를 밟았다. 두 번째는 초단의 세계대회 결승 도약. 둘 모두 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서 만들어졌다. 88년 생으로 19세에 불과한 한상훈은 올 한 해 다른 누구보다도 바둑계를 흔들어 놓은 뉴스 메이커였다.

2006년 말 연구생 퇴출 직전 간신히 프로의 관문을 뚫은 한상훈은 올해 3월 첫 출전 기회가 주어지기 무섭게 펄펄 날기 시작했다. LG배 본선에선 역대 우승자 중 한 사람인 구리의 거대한 대마를 잡는 등 파죽지세 속에 결승까지 올랐고, 내년 2월 이세돌과 마지막 1전을 겨루게 됐다. 또 하나의 국제 행사인 삼성화재배서도 한상훈은 8강까지 진격해 ‘도무지 초단 같지 않은’ 엄청난 활약을 계속했다.

한상훈 초단의 국내 활약상은 그러나 국제무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왕위전 4강, 신예연승 최강전 본선 진출, 그리고 바둑리그 2장 선발 등에 그친 것. 이는 공식 데뷔가 3월부터 이루어져 그 이전 거행된 각종 예선에 출전치 못함으로써 본선 진입의 기회가 좁아졌던 때문이다. 어쨌거나 ‘거물 초단’으로 등장한 한상훈의 새해 활약 여부는 바둑계의 또 다른 구경거리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윤준상 6단

윤준상도 올해 바둑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쓴 기사. 그의 ‘혁명’은 국수전서 이루어졌다. 올해 반세기째를 맞은 제50회 국수전서 기성(旣成) 세력의 상징인 이창호 9단을 3대1로 격파, 일약 국수 자리에 등극한 것이다. 국내 최고(最古) 타이틀전인 국수전은 지난 50년 간 그 시대 최고의 기사들에 의해서만 대를 이어왔다는 점에서 윤준상의 국수 취위(就位)는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조남철 김인 윤기현 하찬석 조훈현 서봉수 이창호 루이나이웨이 최철한에 이어 윤준상은 역대 10번째 국수로 등장했다.

윤준상의 활약은 국수전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국수전에 필적하는 권위의 왕위전서도 도전권을 따내 이창호와 타이틀전을 벌이는 선전(善戰)을 계속했다. 비록 2대3으로 패해 또 한 번의 혁명을 일으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차세대 주역다운 실력을 유감없이 떨쳤다. 윤준상은 연말 신예10걸전서도 허영호를 제치고 우승 트로피를 추가했다. 윤준상으로선 현재 이세돌을 맞아 치르고 있는 국수위 첫 방어전이 발등에 떨어진 당면 과제.

▥강동윤 7단

2007년의 바둑계 얼굴로 강동윤을 빼놓을 수는 없다. 7월 벌어졌던 전자랜드배 결승서 그는 거함 이창호를 따돌리고 당당한 정상의 일각으로 자리잡았다. 또 천원전서도 일직선으로 결승에 올라 현재 원성진과 한창 결승을 펼치는 중이다. 연말엔 백홍석을 상대로 치른 신예연승최강전 결승서도 완봉승을 거두고 타이틀 1개를 추가했다.

강동윤의 2007년을 더욱 화려하게 수놓아 준 무대는 바둑리그였다. 국내 프로들의 최고 무대로 성장한 올해 바둑리그서 18세 소년 강동윤은 12승 1패를 마크, 출전 기사 49명 중 최다승을 따내며 소속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국제무대서는 LG배 32강, 삼성화재배 16강에 그쳐 앞으로 해외서의 활약상 제고(提高)가 과제로 떠올랐다.






▥이창호 9단
전성기 시절에 비해 이창호(32)의 국내외 ‘지분(持分)’은 분명히 떨어졌다. 작년 연말께만 해도 그는 전자랜드배 왕위 국수 십단 등 국내 타이틀, 그리고 국제기전인 춘란배 등 5관왕으로 군림했었다. 똑같이 국제 기전 1개에다 국내 4관왕이던 이세돌과 팽팽한 양두(兩頭)체제가 계속됐던 것. 하지만 현재 이창호는 왕위(국내)와 중환배(국제) 등 단 2개 성(城) 만을 지키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확실히 20년에 걸친 이창호 바둑 인생을 통틀어 가장 초라한 모습임을 숨기기 힘들다.

그러나 이창호가 ‘지는 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잠자는 사자’, 아니 ‘잠시 쉬고 있는 사자’ 정도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올해 LG배(32강) 삼성화재배(16강)에 그쳤지만 중환배를 제패하고 후지쓰배에서 준우승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농심배에선 여전히 가장 믿음직한 버팀목이다. 유일한 국내 타이틀 왕위전에선 무려 12연패(連覇)의 역사를 쌓아가고 있다. 바둑왕전 결승(대 조한승)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국수전과 전자랜드배, 후지쓰배 등에서의 준우승은 ‘조락(凋落)’과 ‘재기 가능성’의 중간에 선 이창호의 현 위치를 동시에 보여준다. 그의 최근 부진은 어디서 올까. 체력 저하, 오랜 승부생활로 인한 피로와 권태감 등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그의 스승 조훈현은 나이 50때도 세계 제패에 성공했었다. 아직 쇠락을 점칠 나이는 전혀 아니라는 뜻. 새해 바둑계가 어떤 판도를 그릴지는 불분명하지만, 이창호의 재 궐기 여부가 가장 큰 열쇠로 등장하리란 전망에는 아무도 이론을 달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