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이 11월 12일 8강전, 14일 준결승을 잇달아 치름으로써 결승 진출자를 가려낼 예정이다. 장소는 도쿄 일본기원 특별대국실. 내년 초 등장할 최후의 1인은 2억 5000만원이란 최고 상금과 영예를 거머쥐게 된다. 개인 뿐 아니라 국가 간 자존심 경쟁도 불꽃을 튀길 수 밖에 없다. 이번 제전 개막에 앞서 관전 포인트를 5가지로 정리해 본다.


▲ 왼쪽부터 이세돌 9단, 박정상 9단, 온소진 4단, 한상훈 초단
▨ 한국, 4년 만의 패권탈환 이뤄낼까

LG배는 초창기 때만 해도 한국 기사들을 위한 전용 기전(?)처럼 보였다. 2004년 8회 대회까지 한국이 6회 우승을 휩쓸자 "국내 기전이냐?"는 비아냥이 심심치 않게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2005년 9회 때부터 상황은 일변했다. 일본 중국 대만 기사들이 속속 패권을 차지하면서 3년 간 줄곧 남의 잔치에 머문 것이다.

지난 11년 간 국가별 우승 분포로 보면 한국이 6회, 중국 및 일본 각 2회, 대만이 1회다. 개인 별로는 이창호가 4회로 최다 우승을 마크했고 유창혁 이세돌(이상 한국) 왕리청(王立誠) 장쉬(이상 일본), 위빈(兪斌) 구리(古力, 이상 중국), 저우쥔쉰(周俊勳, 대만)이 1회씩 정상에 섰다.

올해 12회 대회 8강 대진은 이세돌(한) 대 장쉬(일본), 박정상(한) 대 후야오위(胡耀宇, 중), 온소진(한) 대 고노린(河野臨, 일), 한상훈(한) 대 류징(劉菁, 중) 전으로 짜였다. 7회 대회 챔프 이세돌과 9회 대회 우승자 장쉬, 제19회(2006년) 후지쓰배 주역 박정상 등이 일단 눈길을 끄는 이름이고, 나머지 5명은 새롭게 스타덤에 오른 뉴페이스들이다. 이창호 창하오(常昊) 박영훈 등 손 꼽히는 강자들은 중도에 탈락했다. 과연 이들 8명 중 올해 LG배는 누구의 품에 안길까.


▨ 이세돌 강세 이어지려나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기사는 역시 이세돌 9단이다. 이세돌은 세계 바둑 최강국인 한국서 6관왕으로 군림 중인데 그 중 2개가 국제 타이틀(도요타덴소배, TV아시아선수권)이다. 실질적인 현역 복수(複數) 국제 타이틀 홀더는 세계적으로 이세돌 한 명뿐이다. 이세돌이 지금과 같은 폭발적 페이스를 유지할 경우 내년 초 무렵 최고 9~10관왕까지 겨냥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LG배도 ‘먹잇감’ 중 하나다.

이세돌과 맞서는 장쉬 9단은 일본을 대표하는 기사. 4관왕으로 일본 ‘최대 주주’다. 그러고 보면 이 대결은 역대LG배 우승 경력자끼리의 대결인 동시에 한 일 양국을 대표하는 최고 스타 간의 대결이기도 하다. 이세돌과 장쉬가 지금까지 맞 격돌한 것은 총 4회. 금년 초 벌어졌던 도요타 덴소배 결승 3번기서 이세돌이 2대1로 역전 우승한 뒤 4월 후지쓰배 때 다시 만나 장쉬가 승리, 2대2로 균형을 되찾았다. 두 사람 개인 간의 승부로 보더라도 ‘중간 결산’에 해당하는 셈이다.


▨ 한국 저단진 신예들 어디까지 진격할까

한국 멤버들 중 이세돌 다음으로 중량감을 갖는 기사가 박정상 9단이다. 박 9단은 2006년 제19회 후지쓰배를 통해 세계 정복의 꿈을 이룬 이후에도 맥심배와 중환배(국제대회)에서 연속 준우승하는 등 정상급 기사로 맹활약 중이다. 이번 대회서 쿵제(孔杰) 셰허(謝赫) 등 중국의 대표적 강펀처들을 잇달아 메다꽂은 기세도 상당하다.

박정상에 비하면 온소진(21) 4단과 한상훈(19) 초단은 그야말로 햇병아리에 속한다. 하지만 신예들의 돌풍은 바둑계에선 더 이상 이변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8강까지 온 것이 당당한 실력의 결과였듯 더 이상의 ‘태풍’을 계속해 갈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뜻이다.

온소진은 덩웨이(丁偉)와 야마시타(山下敬吾)를 딛고 올라왔다. 두 상대 모두 중국과 일본의 간판급 강자들이다. 온소진과 맞설 고노린은 현역 일본 천원 타이틀 보유자. 한국의 신인 스타 강동윤, 중국의 소년 맹장 왕레이(王雷)를 연거푸 제쳐 8강에 안착했다. 온소진과 고노린의 공식 대국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상훈은 올해 공포의 초단 돌풍 속에 바둑계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는 앙팡 테리블. 연초 프로에 데뷔하자 마자 LG배 본선 무대를 뚫었고, 기사들의 선망의 표적인 바둑리그에 상륙하는 등 질주를 계속했다. LG배와 삼성화재배 등 세계 기전서 나란히 8강에 오르는 ‘신화’도 만들었다. 특히 LG배 16강전에선 중국의 명실공한 1인자 구리를 눕혔을 때 세계 바둑팬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상훈과 맞설 류징은 올해 LG배 2회전서 한국 출신의 일본 노장 조치훈을 꺾고 올라온 기사. 1990년대 후반 소위 ‘6소룡(小龍)’의 일원으로 꼽히며 크게 촉망 받았던 준재다. 한상훈 대 류징 역시 초면 대결로 이번 8강전서 첫 합을 겨루게 된다.


▨ 중국의 반격 이뤄질까

중국바둑은 최근 몇 년 동안 세력을 넓히면서 한 때는 ‘한국을 추월했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한국의 입장에선 현존하는 라이벌이다. 하지만 올 한해 국제무대 성적표를 비교하면 한국이 뚜렷이 앞선 전과를 올렸다. 새해 벽두 벌어졌던 제3회 도요타 덴소배와 6월 TV아시아배에서 이세돌이, 7월 제20회 후지쓰배에서 박영훈이 우승했고 8월엔 이창호가 제3회 중환배를 품에 안았다.

이에 비해 중국은 3월 열렸던 제6회 춘란배를 구리가 제패한 것이 유일한 국제 우승이다. 국제 단체전인 농심배에서도 안간힘을 다 했지만 결국 한국 우승에 제동을 걸지는 못했다. 아직 진행 중인 제12회 삼성화재배는 4강까지 추린 결과 양국이 각 2명씩만 남긴 채 경합 중이다. 어떻든 이번 LG배서는 반격의 실마리를 잡고 싶은 것이 중국 측의 입장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이번 멤버로 LG배 탈환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후야오위는 중국 랭킹 2위에 올라있다. 올해 LG배와 삼성배 모두 8강까지 오른 기사는 세계적으로 이세돌 한상훈 후야오위 등 3명뿐이다. 하지만 국제 대회 결승까지 밟아본 경력은 없다. 류징 역시 만만치 않은 펀치의 소유자라곤 하나 현재 자국 내 랭킹이 27위에 불과하다. 창하오나 구리가 빠져 중량감이 뒤지는 중국이 과연 우승까지 내달을 수 있을까.


▨ 약진 일본, 그 종착역은?

일본 바둑은 최근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중 양국에 밀려난 채 ‘제3지대’로 전락했었다. 국제대회에선 거의 언제나 이 두 나라를 위한 들러리였다. 일본 선수들이 툭하면 전멸하자 자국 주최 행사 외의 국제 대회는 아예 일본에서 열리기조차 힘들었을 정도였다. LG배 경우만 해도 7회부터 11회까지 5년 중 4년 동안 단 1명도 8강에 진출시키지 못했다. LG배가 일본서 열리는 것은 99년 11월 제4회 대회 8강전 이후 무려 8년 만이다.

그러던 일본이 올해는 무려(?) 2명의 기사를 8강에 올려놓았다. 한 명은 실질적인 일본 최강자로 통하는 장쉬이고 또 한 명은 청년 강자 고노린이다. 일본 멤버로는 100점 만점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90점 이상의 최강 조합이라 할 만 하다. 장쉬가 8강전서 만약 이세돌의 벽을 넘어선다면 우승까지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온소진과 만난 고노린도 대진 편성 자체는 일단 유리한 입장이다. 모처럼 만에 홈에서 LG배 잔치를 맞는 일본이 세계 바둑계의 왕따(?) 신세를 면하고 부활할 수 있느냐 하는 것도 흥미로운 구경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