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한국 바둑의 국제 대회 성적은 최악이었다. 금년 들어서 우승자를 가려낸 국제 대회는 모두 6개. 그 중 중국이 5개를, 일본이 1개를 가져갔다. 한국의 몫은 하나도 없었다는 얘기다.


한국 바둑의 이 같은 부진은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일이다. 한국은 90년대 중반 이후 세계 바둑계의 터줏대감으로 활약해 왔고 총 지분율(持分率)은 언제나 80%대를 넘나들었다. 2000년 8월부터 2003년 3월까지 2년 반 사이엔 국제대회 23연속 우승이란 전대미문의 기록도 작성했다. 그 마지막 무렵 지분율은 당연히 100%에 달했다.

그러나 최근 약 14개월 사이 한국은 중국에 역전 당한 모습이다. 5월 초 끝난 제5회 CSK배서 한국이 보유하고 있던 중국이 패권을 빼앗아 간 탓이다. 현존하는 총 12개의 국제 기전의 국가별 분포는 이로써 중국 6개, 한국 4개, 일본 2개로 바뀌었다. 상금 규모가 큰 메이저급 개인전 6개 대회의 분포만 본다면 한국이 후지쓰배 춘란배 도요타덴소배, 중국이 LG배 잉씨배 삼성화재배 등 3대3의 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전체적으론 중국이 세계 패자(覇者)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하지만 역대 통산 기록으로 본다면 아직 한국의 절대적 지위는 꿈쩍도 않고 있다. 1988년 후지쓰배와 잉씨배로 시작된 세계규모 기전은 지금까지 모두 108회가 치러졌는데 한국은 그 중 67회를 제패했다. 전체의 62% 선에 해당하는 절대적 점유율이다. 중국은 19회(17.6%), 일본은 22회(20.4%)에 걸쳐 각각 정상에 섰다. 현재 3위권 실력으로 분류되는 일본의 우승 회수가 중국보다 앞서는 것은 국제대회 초창기에 해당하는 1990년 대 중반까지 후지쓰배에서 집중적으로 패권을 차지했던 덕분이다.

이 시점에서 팬들의 관심은 한국 바둑이 이대로 소멸할 것인지, 아니면 상반기 부진이 일시적 현상이었음을 보여주며 반격에 성공할 것인지에 쏠리고 있다. 최대의 경쟁국으로 떠오른 중국을 따돌리지 못한다면 10수년 간 한국 바둑이 누려온 영광도 빛을 잃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 해 6월 이후 펼쳐질 하반기 국제 바둑대회 결과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반기에도 약 7, 8개의 크고 작은 국제기전이 열릴 예정이며 그 중 몇 개는 연내에 우승자까지 가리게 된다. 하반기에 펼쳐질 국제 대회들을 점검해 보자.

◇제19회 후지쓰배

지난 4월 개막한 올해 후지쓰배는 현재 8강까지 추려낸 상태이며 6월 3일 준준결승, 7월 1일부터 3일까지 준결승 및 결승전을 치르게 된다. 8강 멤버는 한국이 이창호 이세돌 박영훈 최철한 박정상 등 5명. 나머지 세 자리를 중국 창하오(常昊)와 저우허양(周鶴洋), 일본 유키(結城聦)가 채우고 있다. 대진은 이창호 대 이세돌, 박영훈 대 저우허양, 최철한 대 유키, 박정상 대 창하오로 짜였다.

총 8자리 중 5자리를 차지했으니 한국의 우승 확률은 8분의 5로 절반이 넘는다. 현 춘란배 보유자인 이창호와, 도요다덴소배 및 후지쓰배 챔프인 이세돌의 동족상잔(?)이 좀 걸리지만 거꾸로 4강 한 자리는 무조건 확보했다는 계산도 성립한다. 나머지 최철한과 박영훈도 승산이 높고, 박정상 역시 좋은 승부가 기대되고 있다. 후지쓰배는 98년 11회 때 이창호가 우승한 이후 지난 해 18회(이세돌)에 이르기까지 8년 연속 한국이 제패해 온 한국용(?) 국제 기전이다. 18년 간 통산 전적서도 11회를 석권했을 만큼 한국의 이 대회 점유율은 압도적이다. 올 상반기의 부진이 이 대회를 통해 종지부를 찍고 재도약의 불씨가 될 것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제6회 춘란배

이 대회는 지난 3월 중국 베이징서 개막, 역시 8강까지 추려놓은 상태다. 8강전 대진은 이창호 대 구리(古力), 이세돌 대 셰허(謝赫), 저우허양(周鶴洋) 대 펑첸(彭筌), 창하오(常昊) 대 후야오위(胡耀宇)로 중국 6명과 한국 2명의 대결장. 후지쓰배와는 반대로 중국 기사들 수가 압도적이다.

그러나 춘란배에서 중국은 주최국임에도 불구하고 한 차례도 우승을 차지한 적이 없다. 오히려 5차례의 춘란배 중 한국은 4번이나 우승했다. 디펜딩 챔프 이창호는 이번 대회마저 차지할 경우 3연패(連覇)를 달성하게 된다. 국제 대회서 한국의 가장 믿음직한 ‘투 톱’인 이창호 이세돌이 자기 페이스를 지킬 경우 이 같은 한국 우위 전통은 올해도 계속될 수 있으리란 전망. 8강전 및 4강전은 9월 광조우(廣州)에서 열리며 결승은 내년 초 치러질 예정이다.

◇제11회 LG배

5월 15일 새롭게 출발 선상에 선다. 올해도 지난 해처럼 세계 열강 32명의 토너먼트로 2억 5천 만원 우승 상금의 주인을 가리게 된다. 금년에는 국가별 쿼터가 일부 조정됐으며 휴식시간 동료들 간의 대화 금지, 복장 규제 등 세계 대회 사상 최초의 시도들이 첫 선을 보이게 된다. 결승전도 종전 5번기에서 3번기로 바뀌었다. 국가별 출전자 수는 한국이 13명으로 가장 많고 중국 11, 일본 6, 대만 2명. 과거 10년 간의 역대 LG배에서 6회를 우승했던 한국이 최근 2년 연속 외국인 결승전이란 수모를 털고 최강국의 면모를 되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8강전은 오는 10월, 4강전은 내년 2월 열리며 결승은 4~5월경으로 잡혀있다.

◇제11회 삼성화재배

역시 32강 토너먼트에 결승 3번기로 우승 상금 2억원의 주인을 찾는 형식의 대회. 9월 6, 8일 32강전 및 16강전을 실시하고 10월 8강전, 11월 준결승을 계획하고 있다. 본 대회에 앞서 오는 8월경 각국 출전 희망자들이 겨루는 통합예선을 통해 전체의 절반인 16명을 선발하게 된다. 이 대회 역시 10년 간 한국 기사들이 7회에 걸쳐 우승한 기전이지만 마지막 10회 때 우승한 중국 뤄시허가 현역 챔프로 군림 중이어서 반격이 기대되고 있다. 결승전은 2007년 1월이 유력하다.

◇제3회 도요타덴소배

후지쓰배와 함께 일본이 주도하는 국제대회지만 2년 간격으로 치러진다는 점이 특색. 우승 상금은 일화 3천만 엔이며 32강 토너먼트, 결승은 3번기 방식이다. 7월 26일 개막, 8월 1일까지 약 1주일 간 결승전을 제외한 나머지 일정을 한 호흡에 소화하는 것이 특색이다. 국가별 출전자 수와 명단, 대회 장소 등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2002년 원년 대회서 이창호가, 2005년 2회 때는 이세돌이 우승하는 등 한국 독점의 전통이 이번에도 재현될지 궁금하다. 결승전은 내년으로 넘어갈 전망.

◇제8회 농심신라면배

10월 17일부터 1라운드, 11월 22일부터 2라운드를 치르고 내년 3월경 최종 라운드로 우승 팀을 확정 짓게 된다. 아직 한국 중국 일본 등 출전국 멤버는 결정되지 않았다. 한국은 올 여름 출전자를 뽑기 위한 예선 대회를 치른다. 이 대회의 전신(前身)인 진로배를 포함해 무려 12년 간 단 한 번도 패권을 놓치지 않았던 한국이 올해 초 열렸던 7회 대회 때 처음 우승을 빼앗겨 화제가 됐던 무대. 특히 농심배 6년 간 주장으로 14연승을 혼자 따냈던 이창호가 회복, 일본에 맡겨 둔(?) 패권을 되찾아오는 첨병 역을 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제5회 정관장배

세계 유일의 국가대항 여성 단체전인 정관장배 올해 대회는 10월 31일부터 1라운드, 12월 17일부터 2라운드를 각각 치르고 내년 초 우승 팀을 가릴 계획. 역시 한 중 일 등 출전국 멤버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개인전에서 단체전으로 전환한 2005년 3회 대회와 2006년 4회 대회서 중국이 거푸 우승했다. 한국이 중국의 3연패(連覇)를 저지하고 첫 우승을 거둘지 지켜볼 일. 세계 여류 최강자인 루이나이웨이(芮乃偉)는 이 대회가 단체전으로 바뀐 이후부터 중국 팀 전력의 핵으로 활동 중이다.

◇기타

한-중 같은 타이틀 우승자끼리 대결하는 한-중 천원전과 한-중 신인왕전, 그리고 제2회 강원랜드배 등이 금년에도 열릴 예정. 또 양국 베스트 5가 교대로 상대국 모든 선수와 대결하는 제1회 일월성배의 마지막 5라운드도 올해 안에 소화될 전망이다. 각국 대표들의 폭주하는 일정 관계로 4라운드까지만 마친 채 연기상태인 이 대회는 현재 중국이 한국을 11승 9패로 리드하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한국과 중국세가 맞부딪치는 파열음 속에서 우리 기사들은 올 연말 어떤 성적표를 손에 쥐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