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훈 바둑의 가장 인상적인 대국들은 역시 각종 도전기의 최종 승부나 분수령에 해당하는 바둑이 상당수를 차지할 것이다. 이것은 조치훈이 막판에 몰렸던 적이 아주 많았다는 것임과 동시에, 역전의 발판이 된 바둑에 명국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조치훈은 바로 그런 타입의 플레이어인 것이다.

벼랑 끝에 몰렸을 때,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조치훈의 '승부끼'는 어린시절부터 형성되어 온 것이다. 11살에 입단할 때부터 이미 그 불굴의 투지는 모락 모락 싹을 피웠던 것이다.

조치훈이 본인방에 복귀해서 제2의 전성기를 열어갔던 것은 입헌군주제인 일본 연호가 헤세(平成, 1989년이 원년)로 바뀐 해의 일이다. 3년 반만의 빅 타이틀 복귀로, 10연패의 대기록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참고도

조치훈은 이듬해 고바야시 기성(棋聖)으로부터 도전을 받는다. 고바야시는 기성(棋聖), 명인(名人), 기성(碁聖)의 3관왕에 올라 있는 당시 랭킹 1위. 고바야시로서는 본인방을 손에 넣어 대삼관(大三冠 기성, 명인, 본인방을 동시 보유하는 것을 말함)을 달성하고 싶은 욕구가 몹시 강했다. 조치훈에 이어 두 번째 대삼관 보유자가 되어 정상을 만끽하고 싶다는 욕구.. 승부사로서 당연하다 할만한 이 욕심만 보아도 기세는 분명히 도전자에게 있었다.

제1국 전야제에서 조치훈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8년전의 본인방전과는 반대로 이번은 백이면 백, 고바야시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제7국까지 간다면 내가 이길 것이다."

' 제7국까지 간다면'이라는 예상치와 조건은 현실로 이루졌다. 또한 결과는 조치훈이 1승 3패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3연승을 거두어 역전 방어에 성공하는 숭고한 승부의 현장이 됐다.

조치훈은 제4국에서 불과 98수만에, 그러니까 제한시간 8시간의 이틀 바둑에서 이튿날 점심 무렵에 돌을 던졌다. 조치훈은 4국이 끝나고 난 뒤에, "나는 이제 안되는 것 같다. 고바야시는 정말 강하다."라고 말했다. 또 당시의 분위기도 고바야시쪽으로 확연히 기울고 있어, 조치훈의 말은 겸손이 아닌 사실로 모두에게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조치훈은 불사신이었다. 그리고, 제5국이 흐름을 바꿔 놓는다. 이 바둑은 장래 본인방 전사(全史)가 누구의 손에 의해 쓰여지더라도 결코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이 바둑에는 명국이라는 것과는 약간 다른, 승부사로서의 기질, 대기사(大棋士)로서의 근성과 비장함이 뼈속 깊히 녹아 있는 것이다.

<참고도>를 보자. 흑 ▲의 붙임에 백5라면 흑6의 이음에 연결하는 수가 없고, 백6으로 두점을 잡으면 흑5로 위쪽이 잡힌다. 조치훈의 위기상황. 여기서 조치훈은 백1로 끊어갔다. 이 수는 첫날의 봉수후 54분을 장고한 수였다. 상대인 고바야시도, 검토실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강력한 끊음!!.

11수까지 진행된 후 A,B,C,D의 과정에서 백B로 때려내는 수를 절대 선수로 취해 백D의 강공으로 활로를 찾는 수순이 통쾌했다. 다음은 필연적으로 중앙의 공방과 좌하귀 백의 사활이 불을 뿜었는데, 조치훈은 이 사활을 모두 읽고나서 참고도와 같은 타개를 결행했던 것이다.

실전은 고바야시가 흑65로 잡으러 갔던 것이 백66~76까지 조치훈의 완벽한 방어에 막혀 깨끗하게 잡히고 있다. 이 곳이 약 7집. 흑65로 66으로 뛰어 끝내기 했더라면 백집은 거의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바둑은 얄궂게도 백7집반승으로 끝났다. 여기서의 손실로 패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것이다.

조치훈은 국후 "끊는 수는 하나의 결단이었다. 좋은 수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좋고 나쁨을 초월한 수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이라면 이런 수를 결행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귀에서 양패로 버티는 묘한 삶의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라는 감상을 밝힌다.

잔인하게도 이 시리즈는 최종국까지 고바야시에게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최종국 종반에 들어서 중요한 곳에서 공배를 두는 바람에 역전을 허용했다. 고바야시를 아는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할 순간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믿을 수 없다. 고바야시에게도 그런 일이 있는 것일까? 신의 장난이 아닐까?! "

(류승필 사이버오로 컨텐츠팀장 spryoo@baduk.or.kr)

○... 관련기보는 조치훈과 고바야시의 45기 일본 본인방전 도전 5국이다. 칼럼의 참고도가 출현한 기보로 조치훈의 강렬한 기백과 승부사적 면모가 잘 드러났다는 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