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훈에 대한 첫 도전(1982년 제37기 본인방전)에서 2 : 4로 패배의 쓴잔을 마셨던 고바야시는 '타도 조치훈'의 무대에 다시 돌아오기까지 3년을 기다려야했다. 3년이라는 세월은 기다리는 사람에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이다. 이 때를 고바야시는 '몸부림쳤던 시대'라고 회고했다.

그러나 고바야시는 헛되이 3년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신념을 가지고 칼을 갈고 있었다. 마침내 1985년 고바야시는 명인 도전권을 획득했다. 고바야시가 두 번째 기회를 얻기까지의 3년간은 두 사람의 환경을 크게 변모시켜 놓았다.

조치훈은 1983년 후지사와 슈코(藤澤秀行)로부터 기성을 빼앗아, 대삼관(기성, 명인, 본인방의 3대 타이틀 동시 보유)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러나 후지사와로부터 기성을 획득했던 그해, 본인방을 린하이펑(林海峰)에게 내주고 2관왕에 머무르게 된다. 3대 타이틀 중에 하나를 잃었지만, 조치훈이 1인자라는 것은 만인이 인정하고 있었다.

고바야시는 1984년 가토 마사오(加藤正夫) 9단을 3 : 2로 격파하고 두 번째 공식 타이틀인 십단을 획득했다. 이듬해인 1985년에는 오타케 히데오(大竹英雄) 9단을 3 : 0으로 완파하고 십단 방어에 성공했다. 그 의미는 고바야시 개인에게 적지 않은 것이었다. 발전하고 있는 고바야시의 기량이 십단 획득과 방어를 이뤄냈으며 그로 인해 정상급 기사의 필수요소인 자신감을 얻은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1977년의 천원 획득 때와는 달리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 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기회를 노린다.' 그러나 그 상대(=조치훈)가 있는 곳까지 (아직)다가갈 수 없다. 고바야시의 회고이다. 자신감을 쌓으면서 칼을 갈던 이 시기를 '몸부림쳤던 시대'라고 부른 이유의 일면을 볼 수 있는 말이라 할 수 있겠다.

우선, 1983년 본인방 연속 도전을 눈앞에 두고 있던 고바야시는 리그 최종전에서 패배, 공동1위가 되어 린하이펑과 결정전을 벌였으나 또다시 패퇴하고 말았다. 조치훈 본인방에 도전한 린하이펑은 조치훈을 격파하고 본인방이 되었다.

1984년, 명인 본선리그에서도 동률 1위가 되었지만 도전권은 오타케의 몫이 되었다. 같은 해 기성전에서도 결승에 진출했지만, 다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에게 2 : 1로 패하며 분루를 삼킬 수 밖에 없었다.

고바야시의 또 다른 회고 - '조치훈은 내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훗날 내가 기성과 명인을 보유할 때, 합계 14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조치훈에게도 몸부림쳤던 시대가 있었다. 그만큼 도전자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쫓고 또 쫓고 끊임없이 뒤쫓았던 조치훈에 대한 도전권을 고바야시는 마침내 손에 넣었다.1985년 기성전 본선리그에서 7승 1패로 단독 1위가 된 고바야시는 조치훈과 2번째의 7번승부를 맞게 된 것이다.

이전 첫번째 본인방전 도전기의 조우에서 힘의 차이를 뼈아프게 느꼈던 고바야시였지만 3년의 세월은 고바야시를 바꿔 놓았다. 손 끝에 전해져 오는 느낌, 자신감이 다음의 말로 표현되고 있다.

'조치훈을 넘어뜨릴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는 없다.'

고바야시는 '초긴장감'을 가지고 맞이했던 기성전 도전1국에서 승리를 거두고,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 류승필 CYBERORO 컨텐츠팀장/ spryoo@baduk.or.kr ]

[배경설명]

○... 위글은 조치훈 9단이 일본 최초로 대삼관을 이루며 1인자로 올라섰을 때, 라이벌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의 절치부심하는 상태를 중심으로 쓰여졌다.

●... 1983년 조치훈 9단은 제7기 기성전에서 후지사와를 3연패후 4연승, 4:3의 극적인 스코어로 제압하고 일본 최고봉에 올랐다.

조치훈을 성원하는 한국팬들에겐 태산같은 감동을 안겼고, 일본 바둑계에게는 1인자의 세대교체의 감회와 새로운 시대의 태동을 알린 사건이었다.

▶조치훈이 기성에 오르던 날, 오타케의 말
"그날(3월 17일)밤 나는 한숨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마침내 한시대의 장막이 걷히고 또 한시대의 새벽이 밝아 오고 있구나하는 설렘 때문이었다."

▶ 기성전 도전1국 전야제에서 "딱 네판만 가르쳐주겠다(4:0으로 이기겠다)"는 노 기성에게 "세판만 배우겠습니다(4:3으로 이기겠습니다)"라며 조치훈 9단이 응수한 일은 아직도 한,일 바둑계에서 유명한 일화로 회자되고 있으며, 종종 바둑 기사에서도 인용되곤 한다.

▶ 이 대국이 끝난 직후, 조치훈은 한국에 잠시 들렀다. 당시 최고의 인기가수인 혜은이(지금의 GOD?)씨가 축가를 직접 불렀다고 하니 조치훈 9단의 당시 위상과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 관련기보는 조치훈 9단의 제7기 기성전 도전 7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