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훈이 큰 승부를 계속하고 있는 때에, 실로 심한 좌절감과 패배감을 안겨준 사건들은 1985년부터 1986년에 걸쳐 일어났다. 조치훈이 펼쳐온 긴 승부의 여행에서 이때만큼 좌절을 맛보았던 적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린하이펑(林海峰)에게 본인방을 빼앗기고 최초의 대삼관(기성, 명인, 본인방의 3대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하는 것을 말함, 대삼관은 일본 바둑 역사상 조치훈만이 4차례 달성했던 진기록이다)을 저지당했던 때도, 혹은 고바야시 사토루(小林覺)에게 기성을 빼앗겼을 때도, 조치훈에게 좌절이란 단어는 없었다. 1985년부터 1986년에 걸친 수개월은 단순히 타이틀의 이동이라고 하는 것보다, 그 이상의 것을 가져왔던 것이다.

이번회부터는 몇차례에 걸쳐 그 이야기를 더듬어 보기로 한다.

1983년 후지사와 슈코(藤澤秀行) 9단에게서 기성을 탈취, 대삼관을 달성했던 조치훈은, 기사로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정상에서의 관조를 만끽할 수 있었던 기사를 꼽아보자면, 사카다 에이오(坂田榮男)이래 조치훈이 유일한 기사일 것이다.

그러나, 그 절정의 시대에 두려운 상대는? 하고 묻는다면 조치훈은 가장 먼저 고바야시 고이치를 꼽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매일매일 노력하는 사람이 가장 두렵다.'라는 조치훈의 말처럼 고바야시는 노력형 기사였고, 조치훈이 껄끄러워했던 기사중의 첫 번째라는데 이의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조치훈이 대기록들을 쌓아가고 있던 80대 초의 몇 년간, 고바야시의 대국기록란과 전적은 공백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선비는 3일을 만나지 못하면 괄목상대한다는 옛말이 있듯이 바로 고바야시가 그러했다.

앞서 4회와 5회에 게재했던 본인방전으로부터 3일 같지 않은 3년이 지났다. 이 3년이 조치훈의 라이벌, 고바야시를 정진시키고 단련시켰다. 발판은 1984년의 십단 획득, 그리고 이듬해에는 명인 도전자가 된다. 결과를 미리 말하면 조치훈은 고바야시에게 4 : 3으로 명인을 내준다. 한시대를 쌓아 올렸던 조치훈 아성이 반은 허물어진 것이다.

'고바야시는 3년 동안 진정 성장해 있었다. 그는 이길만해서 이겼고, 나는 질만해서 졌다. (내가) 약했기 때문에 졌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치훈의 말이다.

'3년만의 고바야시'!! 그 강렬한 이미지를 보며 조치훈은 예전 자신이 고바야시의 높은 벽을 뛰어넘던 그 순간을 상기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손자병법의 '일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실천하는 고바야시를 보면서 자신이 질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하면서 말이다.

제10기 명인전, 강력한 도전자 고바야시를 맞아 막판에 몰린 상태에서 조치훈은 역전의 힘을 발휘, 5, 6국을 연거푸 승리하며 승부를 최종국으로 몰고 가는데 성공했다.

마침내 제7국, 초반은 고바야시가 앞서 나갔으나 조치훈이 줄곧 따라붙어 한때는 조치훈이 좋아졌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을 끝내 그를 외면했고. 명인위는 고바야시의 수중에 떨어지고 만다.

'3년전의 본인방전 때라면 이 최종국은 나의 승리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상에서 느끼는 박력이 전혀 달랐다. 명인을 빼앗긴 것은 시대의 흐름이었다.' 조치훈이 대국후에 토로한 일단의 심정이다. 시대의 흐름은 확실히 변해 있었다.

이 직후에 고바야시는 천원까지 합병, 3관왕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기성전 도전권도 획득했다. 그 기세는 멈출 줄을 몰랐다. 속기 바둑인 NEC컵을 제외하면, 기성은 조치훈 최후의 보루였다. 그해 연말 조치훈은 藏王溫泉의 산에 틀어박혔다.

한해 벌어졌던 모든 1년치의 기보를 가지고 연말 여행을 떠나는 것은 조치훈의 독신시대 습관이다. 지금 예전 습관을 되풀이하는 것은 조치훈이 상당히 궁지에 몰려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그리고 맞이한 1986년, 예상치 못한 운명이 조치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 류승필 CYBERORO 컨텐츠팀장/ spryoo@baduk.or.kr )

○... 관련기보는 제10기 일본명인전 도전6국의 기보이다. 조치훈 9단은 이판을 승리해 3:3의 타이를 이뤘으나 도전7국에서 패해 타이틀을 빼앗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