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의 빠르고 정밀한 수읽기가 어린 시절에 지속적으로 익힌 사활훈련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세돌이 가진 또 하나의 중요한 재능, 발상의 자유로움은 태어난 환경의 혜택이다. 섬에서 자라나면 자연스럽게 탁 트인 바다의 마음을 배우게 된다.

바다는 때때로 거친 얼굴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드넓고 푸른 자유로움을 더 많이 보여준다. 바다는 이세돌에게 콘크리트 빌딩숲에 갇혀 전자오락을 즐기는 도시의 아이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발상의 자유를 키워주었을 것이다.

이세돌이 간간이 보이는, 기성세대가 설정한 도덕과 예절의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분방(奔放)함도 바로 이런 환경의 영향이 아닐까. 기풍은 조훈현을 많이 닮았지만 무시로 '건방지다'는 말을 들을 만큼 거침없이 드러내는 진솔한 언행과 기질은 20대의 유창혁과 비슷하다.

그것은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는 그 마음이 이제는 '누구에게나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컸다.

오만함을 매력으로 바꾸는 것은 꾸며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런 기질을 타고난 두 천재, 유창혁과 이세돌이 부딪치면 어떤 화음이 일어날까. 그림을 하나 더 보자.



제15회 후지쯔배 결승
●유창혁 9단 ○이세돌 3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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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변에서 흘러나온 흑 대마 공략에 실패하면서 백의 비세로 기운 장면. 백1의 깊숙한 침입은 비세를 의식한 승부수인데 흑2이하 백9까지 됐을 때 흑10으로 밀어간 수가 '백 두점을 직접 움직이는 수는 없다'고 판단한 유九단의 강수.



1도(백 유망)
우세하다고 흑1로 백 한점을 잡는 것은 백2이하 10까지, 흑쪽에 좋지 않은 결과가 된다. 또 흑1로 6의 곳을 두는 것은 백A로 쌍방 어려운 국면이다.



2도(실전진행)
백1,3이 신속한 발상의 전환. 백11까지, 침투했던 돌을 흔쾌히 버리면서 우변 흑진을 납작하게 누르고 하변을 지키는 전과를 올려 비세의 국면을 역전시켰다. 보고 나면 대단치 않은 것 같지만 이런 진행은 발상이 자유롭지 않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손종수 농심辛라면배 관전필자 / wbstone@baduk.or.kr )

○... 생애 최초의 세계대회 우승이었을 뿐 아니라 이세돌 3단의 바둑계 위상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한 제15회 후지쯔배 결승국.
한국 바둑계의 각종 매체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특집을 기획을 할 때마다 두고 두고 써먹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세돌 3단의 개인기록에서 있어서도 기념비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