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바둑에서도 대성의 조건으로 가장 먼저 꼽는 것은 '재능'이다. 이세돌의 재능은 어느정도일까.

"비금도 시절에 아버지는 우리들만 아니라 여러 동네 아이들에게도 바둑을 가르쳤어요. 세돌이는 그 중에서도 단연 뛰어났죠. 정말이지 하루에 한 급씩 느는 것 같았어요"

가족 오남매 중에서도 이세돌과 유독 정이 도타운 누나 이세나씨의 말이다. 세돌의 재능에 얽힌 가족간의 짧은 일화도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세돌의 집안은 바둑가족이다. 프로에 입문한 맏형 상훈과 막내 세돌은 물론, 오남매 모두가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프로 입문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네째 차돌은 정석책 한번 제대로 안 보고 아마 5,6단의 수준에 이를 만큼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한다.

"세돌이가 없었다면, 차돌이가 프로기사가 됐을 지도 몰라요. 세돌이가 바둑을 배우기 전에는 아버지가 가르친 아이들 중에서 차돌이가 가장 빨랐으니까요. 그런데 나중에 배운 세돌이에게 추월당하는 바람에 흥미를 잃어버린 것 같아요."

프로, 그것도 최정상에 오르는 일은 타고난 재능만으론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고 승부사의 절대조건 중 재능다음으로 꼽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근성일 것이다. 역경에 부딪쳤을 때 물러나지 않고 기어이 극복해내는 집념, 어쩌면 승부사의 조건으로는 재능보다 근성을 상위에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 세돌이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유별나다고 할 정도로 고집이 세고 지는 것을 싫어했어요. 이따금씩 사소한 일로 형들과 다투곤 했는데 세돌이가 지는 걸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형들에게 맞으면서도 끝내는 이겼죠. 언제든 이겨야 그만두는 애였어요. 또 언젠가는 제가 세돌이에게 무엇인가를 물어보았는데 무슨 이유인지 영 말을 안하고 도망만 다니는 거예요. 세돌이를 잡으려고 한 시간 이상이나 힘들게 쫓아다닌 기억이 나네요, 끝까지 원하는 대답은 듣지도 못했고...

역시 이세나씨의 말인데, 이세돌은 어린시절의 근성과 기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 하기 싫은 일은 어떤 어려움을 겪어도 하지 않는 다. " 이런 기질은, 보통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 쉽다. 친구도 사귀기 어렵고 사회에 적응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모든 것을 헤쳐나가야 하는 프로바둑의 승부사라면 문제가 다르다.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으려는 근성과 기질은 어떤 어려운 장면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정면 돌파할 수 있는 강철같은 의지가 된다. 이세돌은 근성과 기질 마저도 프로바둑에 맞추듯 타고났다는 얘기다.

(손종수 농심辛라면배 관전필자 / wbstone@baduk.or.kr )

○... 이세돌의 기질을 설명해주는 상징적인 대국과 기보는 2002년 열린 한중 신인왕전의 결승2국 기보일 것이다. 이세돌 3단은 한중 신인왕전에서 2-1로 승리했지만 결승2국에서는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자 던져버렸다. 자신이 판을 나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 나중에 젊은 기사들이 객관적으로 검토한 결과는 이세돌3단의 판단이 상당부분 옳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통의 프로들은 그정도에서 과감하게 던지지는 않고 역전을 위해 피치를 올리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이세돌 3단의 근성과 기질을 엿볼 수 잇는 제5회 한중신인왕전 결승2국의 기보. 관련기보를 클릭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