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왜 강한가'. 사실, 이 주제는 이미 2000년도 바둑가를 뜨겁게 달군 바 있으므로 그다지 새롭지 않다. 그런데도 또다시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떠오르는 이유는 그가 '폭풍의 질주'로 불린 2년 전보다 한층 강해진 기량, 확실한 실적을 앞세우며 '이창호-이세돌 라이벌시대'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는 정상의 8부능선에서 군집중인 신예강자들과는 분명히 다른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세돌의 최근 대 삼천왕(이창호, 조훈현, 유창혁) 전적(<표1>참조)을 보면 왜, 이 나이 열아홉의 앳된 청소년에게 사천왕의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지, 나아가 바둑가의 관측자들이 왜 '사천왕시대'를 뛰어넘는 '이창호-이세돌 라이벌시대'의 도래를 거론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이세돌 對 삼천왕 전적(이세돌 기준)

상대 통산전적 2000년 이후
이창호 7승 12패 7승 11패
조훈현 7승 5패 7연승
유창혁 10승 12패 7승 6패

삼천왕과의 전적 집중분석

세계최강 이창호에게는 아직 열세다.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2000년 이전에는 99년 봄 KBS 바둑왕전에서 꼭 한번 만났는데 여기서 첫 패배를 기록한 이후 제 36기 왕위전 도전 5국까지 7승 12패를 기록중이다.

승률 40%로 여전히 밀리고 있으나 중요한 것은 그 내용, 비록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제5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5번기에서 거둔 초반 2연승은 10대 신예기사들이 일제히 삼천왕을 향해 진일보하는 기폭제가 되었고 제15회 후지쯥 준결승에서 거둔 승리는 한국기사중 다섯번째로 세계대회 우승을 기록하며 사천왕의 자리로 뛰어오르는 디딤돌이 되었다.

대 조훈현 통산전적은 이세돌의 출세를 가장 극명하게 웅변해준다. 5연패후 7연승. 국내에서는 2인자로 밀려났지만 2001년에만 두개의 세계타이틀(삼성화재배, 후지쯔배)을 거머쥐며 흔들림없는 '바둑황제'로 군림중인 조훈현에게 7연패를 안겨준 일은 실로 충격적이다.

조훈현에게 7연패를 안겨준 기사는 국내외를 통틀어 이창호 이외에는 없다. 이창호는 타이틀무대 전면으로 떠오른 90년대초반부터 스승 조훈현과 함께 세계바둑사상 유래가 없는 20~30번기의 '사제대쟁기(師第大爭棋)'를 버리며 연승과 연패를 주고 받았다.

90년대 초반에는 이창호의 연패가 많았고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그 반대현상이 일어났다. 절대자의 자리가 조훈현으로부터 이창호에게 양위되던 시기였다. 다시 말하면 이들이 주고받은 연승, 연패의 기록은 쉴새없이 이어진 타이틀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세돌의 대 조훈현전 7연승은 번기(番棋)로 겨루는 타이틀전이 아닌 토너먼트 또는 리그전에서 기록된 것이다. 누가 한 기전에서 한번씩 마주치게 되는 토너먼트나 리그전에서 조훈현에게 7연패나 안겨줄 수 있겠는가. 이 기록은 '향후 바둑판도는 이창호-이세돌 양강 구도가 될 것'이라는 주장의 강력한 근거이기도 하다.

이세돌의 기량이 조훈현-이창호 사제와의 격돌로써 입증된 것이라면 사천왕으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실적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기사는 유창혁이다.

유창혁 역시 이세돌과의 통산전적에는 12승 10패로 앞서있으나 그 실속에서는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세돌이 입단이후 획득한 여섯개의 타이틀 중 세개씩이나 안겨준 은인(?)이 바로 그다.

국내에서는 배달왕기전과 KTF배를, 세계대회에서는 후지쯔배를 양보했다. 그러고보니 이세돌이 가진 메이저타이틀은 모두 유창혁을 상대로 쟁취한 것인데 2000년 이후에는 상대전적에서도 7승 6패로 앞서가고 있다.

앞에서 열거한 세 기사는 한국의 삼천왕일 뿐 아니라 세계의 삼천왕이기도 하다. 국제대회 17연속 우승이라는 위대한 신화가 모두 이들의 손에서 이루어졌으니(여류기전 제외) 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에서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가, 그런 의미에서 최근 이세돌이 대 삼천왕전을 통해 보여준 기량과 실적은 사천왕의 자격을 인정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되지 않을까.

(손종수 농심辛라면배 관전필자 / wbstone@baduk.or.kr )

○... 관련기보는 2002년 7월 10일에 열린 '바둑황제' 조훈현 9단과 이세돌 3단의 왕위전 도전자 결정전. - 이 대국에서 이세돌 3단은 반집승을 거두고 도전자가 된다. 반집의 행운또한 이세돌의 편이었던 셈.

●... 관련 사진은 2002년 6월 24일의 KTF 결승전 모습. 對 유창혁 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