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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수학석학 아름다운 수학 이론, 바둑에 숨어있을 것
 
‘동양의’ ‘신비한’‘고대의’ 게임 바둑은 과학자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다. 천재 수학자 존 포브스 내쉬의 전기를 소재로 해 만든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도 프린스턴 대학의 수재들이 바둑에 몰입하는 장면이 잠깐 등장해 바둑계에선 화제가 됐었는데, 실제로 전 세계 컴퓨터 공학ㆍ 수학 등 분야의 학자 중에 바둑에 관심을 보이는 이가 많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바둑의 본질을 파헤치려는 이들의 연구 노력은 우리 못지않다. 바둑 실력은 대개 뛰어나지 않지만 바둑의 무한한 매력은 이들을 끌어당긴다. 실력이야 어찌 됐건 바둑을 좋아하지 않으면 애초의 연구 동기 부여가 잘 안 될 것임은 틀림없다.

바둑 기자들이 자주 출입하는 한국기원 지하의 바둑TV 라운지의 한 켠은 바둑 강좌가 열리는 곳으로 쓰인다. 한번은 노트북으로 기사를 쓰고 있노라니 멀찍이서 또렷한 ‘잉글리시-’가 들렸다. 잠시 그쪽에 가 살짝 들여다보았는데 한 외국인이 강사와 함께 복기하고 있었다.

내친김에 가까이 가서 몇 마디 물어봤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 수학과의 해프(L. R. Haff) 교수(72)라고 했다(응, 수학?). 초빙교수로 한국에 올 기회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강좌에 열중하는 걸 보니 해프란 사람이 바둑에 푹 빠져 있는 인물임이 확연히 느껴졌다.

바로 인터뷰를 하지는 못해 다음으로 미뤘는데, 해프 교수는 미국으로 돌아가 버려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바둑을 무척 좋아하는 미국 교수가 느끼는 바둑의 매력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미국은 프로제도가 생기는 의미 있는 2012년을 맞이한다. 해프 교수는 미국의 바둑인, 어떤 느낌일까. 이메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눠 봤다.

- 한국기원 지하에 있는 바둑TV라운지(여기에서 바둑강좌가 행해진다)는 어떻게 알게 됐고, 어떤 계기로 그곳에서 바둑수업을 듣게 됐나?
“미국 바둑인들은 대부분 한국기원과 정상급 프로기사들을 잘 안다. 나는 한국에 여러 번 방문했는데 꼭 한번 한국기원을 가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지난 10월 한국기원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그때 나는 고려대학교에 초빙교수로 와 있었다.)

한국기원에 난 그저 바둑강좌를 하나 들어볼 생각으로 간 것이었다. 물론 1층 복도에서부터 거기 계신 분들은 무척 친절했다. 그때 발걸음이 지하로 향했는데, 거기서 강사(김시열 아마6단)를 만나게 됐다. 김 선생님은 거기 전반적인 행정 업무를 보면서 강의도 하셨다. 난 한 번에 6~7일 수업을 받았다. 김 선생님의 강의는 대단히 훌륭했고, 같이 강의를 듣는 사람들과 바둑을 두는 것도 정말 재미있었다“

- 바둑과 수학 사이에 심오한 연결고리가 있다고 생각하나?
“조합게임이론이라고 알려진 수학의 한 줄기가 바둑의 끝내기 분야를 풀어내기 위해 수차례 사용 되어 왔다. 그밖의 연구는 잘 모르겠다. 나는 바둑에 내포된 아름다운 수학 이론들이 더러 있을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그것들은 깊이 감추어져 있어 명료하게 표현하는 작업이 어려울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바둑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있나?
“나의 연구 배경은 수학통계학이며, 한 번 논문<바둑의 최초 네 착수(L. R. Haff: “The first four moves in the game of go,” Chance, Amer. Statist. Assn. 9, No. 3, 1996>을 발표한 적이 있다.

데이터는 잡지 고월드에 게재된 다량의 프로기보를 바탕으로 했다. 나는 바둑의 포석이 전형적으로 귀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에 대해 연구하고자 했다.

연구는 다소의 성과를 내어 ‘낮은 첫수’와 ‘높은 첫수’를 (내가 의도했던 대로) 정량화할 수 있었다. 또 대국 결과로 그 관계를 밝혀냈다.”

- 우리가 바둑을 학문적으로 규명할 수 있다고 믿나?
“수학자와 과학자 대다수가 바둑이 가진 깊은 학문적 의미에 동의할 것으로 확신한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바둑’ 혹은 ‘바둑과 문화’라는 식의 이름으로 과목을 개설하는 대학이 있다.

이번 겨울(2011년),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나는 바둑을 어떻게 두는지 모르는 학생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과목을 맡았다. 인원은 20명으로 제한했다. 파워포인트를 통해 수업을 시작하고 그 뒤엔 한동안 13줄 바둑판으로 실전을 하게 할 생각이다. 바둑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몇 개의 논문을 필독서로 지정해 놨다.”

- 바둑을 사랑하는 이유는?
“늘 수학을 사랑했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수학과 비슷한 경험으로, 또 수학처럼 자연스럽게 바둑을 사랑하게 됐다. 다분히 감정적인 과정이었을 것이다.”

- 바둑이 한 사람의 일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
“그 무엇이 됐든 진지한 헌신과 활동은 개개인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깊은 영향을 끼친다. 나한테 그것은 수학과 바둑이다. 어떤 사람에겐 그것은 음악이 될 수도 있고 발레 또는 UFO관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색적인 ‘소주’ 탐구도 있겠다. 크크(나도 소주를 좋아한다).”

- 서울에는 매년 오나?
“지난 10년간은 거의 해마다 온 듯하다. 10년이 약간 넘었든가…”

- 서울에선 그동안 바둑에 관해 어떤 활동을 했나?
“고려대학교 근처의 기원에 가는 걸 즐긴다. 아주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고 금연실이 큰, 도심의 기원도 가 봤는데 맘에 들었다. 그리고 최근엔 한국기원을 알게 됐다.”

- 미국과 한국에 바둑 친구들이 있나?
“한국과 미국에 바둑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다. 나의 박사 제자 중 한 명은 한국인이었는데 바둑을 아주 좋아했다. 실제로 수학으로 인연이 된 내 동아시아의 제자들은 수년간 나의 바둑 실력이 느는 데 도움을 줬다.”

▲ 바둑 강의가 펼쳐지는 한국기원 지하 라운지. 세계적인 수학 권위자 해프 교수도 얌전히 바둑 강좌를 듣는 학생이 된다.

- 바둑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게 있나?
“샌디에이고에서 일주일에 한 번 바둑애호가들끼리 소모임을 가진다. UCSD 학생들의 작은 모임에도 가끔 참여한다. 온라인 바둑은 말할 것도 없고.”

- 훗날 미국 정부와 오바마 대통령이 바둑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있을까?
“경제 여건과 우선순위에 달린 문제다. 미국 정부가 ‘게임’에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 부을 것으로 생각하긴 어렵다. 만약 그럴 일이 생긴다 해도 체스 쪽이 먼저 고려되지 않을까.”

- 한국ㆍ중국ㆍ일본ㆍ대만 프로기사 중에 한 사람의 팬으로서 좋아하는 기사가 있나?
“내 실력이 출중하지 못한 관계로 프로 바둑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다. 물론 프로기사들을 많이 존경하고 이름도 잘 알지만 특별히 팬으로서 누구 한 명을 꼽지는 못하겠다.”

- 미국바둑협회가 프로제도를 만들면서 세부 규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당장 2012년부터 입단대회가 열린다. 미국도 프로기사를 갖게 되는 것인데, 미국 바둑인으로서 소감을 말해본다면?
“실로 야심 찬 계획이다. 성공을 기원한다. 이 계획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세계 바둑계를 위해서도 좋은 일일 것이다.”

- 그밖에 바둑인들에게 바둑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 생각들을 말해 본다면?
“젊은 날, 나는 체스를 했다. 언제나 이런 생각을 했다. ‘언젠가 방대한 체스 정보를 축적하고 훌륭한 체스 선수가 되리라’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바둑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바둑을 처음 접한 건 1979년 스탠퍼드 대학 통계학부 교수 시절 안식년을 맞이했을 때였다. 커피휴게실에서 찰스 스테인(Charles Stein) 교수가 한 일본 방문객과 바둑을 두는 걸 봤다. 나는 그들이 무엇을 하는 건지 전혀 몰랐고, 스테인 교수가 친절하게 간단한 설명을 해 줬다.

실제로 바둑을 시작한 건 50살 때였다. 회상해 보건대 당시 수학과 교수실엔 먼지 덮인 보급판 책더미가 있었다. 그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게임’이란 책을 발견했는데 일본기원에서 발행해 영어로 번역된 바둑 책이었다.

그걸 복사해 집으로 가져가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전에도 아이들에게 그런 식으로 체스를 가르친 적이 있었다. 그 복사본을 집으로 들고 간 이후 나는 다시는 체스를 하지 않았다.

아이들 중 한 명만이 바둑에 관심을 보였다. 10살 난(당시) 아들 다니엘이었다. 댄(Dan)과 나는 이 게임에 완전히 중독됐다. 우리 둘은 바둑 책을 몇 권을 더 섭렵했고, 샌디에이고에 있는 바둑 클럽에 다녔다. 처음부터 아들 댄은 나보다 4점 치수 위였다. 역시 재능 있는 아이들은 흥미만 가지면 빨리 느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로는 바둑이 빨리 늘지 않아 좌절하곤 한다. 여기 샌디에이고라는 환경이 좀 고립되었다고 생각한다. 강자들을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인터넷이 이런 몇 가지 장애를 극복하게 해줬다. 때론 강자들에게 복기를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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