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암대연구①②③

세계 출판사상 독자들에 의해 '판금조치(?)'를 당한 서적이 또 있었을까? 당국의 검열이나 무슨무슨 위원회의 가위질, 뭇 소송과는 무관하게 순전히 책을 사본 독자들, 그것도 끔찍한 애독자들에 의한 출판 금지 조치라니.

세계바둑계 최고의 연구집단 '충암연구회'의 저작물 「충암대연구」는 바둑계로부터 사상 초유의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당한 '비록(悲錄)'이자 '비록(秘錄)'이다. 그 사연을 알아보면 이렇다. 충암연구회원들의 공동저작으로 '충암연구보고서'라는 바둑저술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89년 월간『바둑』10월호에 연재강좌로 실리면서부터였다. 당시 충암연구회의 초창기 멤버는 양재호 五단(이하 당시 단), 최규병 四단, 유창혁·이창호 三단 등 네명.

91년까지진행된 이 '비밀문건'은 그러나, 자의반 타의반으로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게 된다. 이유인즉, 이런 범국가적인 기밀(?)의 해외유출은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도 용납해선 안된다는 바둑계의 준엄한 여론 탓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충암연구보고서」는 91년 월간『바둑』12월호를 끝으로 연재가 중단됐고 이후 95년 그 동안의 연재물을 정리, 바둑서당이란 출판사에서 두권의 단행본으로 묶여 나온 것(현재 절판)을 제외하고는 독자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리게 된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법. 인터넷 혁명으로 대표되는 정보공유, 벤처마킹의 시대에 '주요 정보의 유출방지' 운운의 낡은 논리는 더 이상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없었고, 이에 세기말인 99년 1월, 「충암연구보고서」는 8년만에 다시 햇빛을 보게 된다. 「충암X파일」이란 이름으로 월간『바둑』지에 1년간 새롭게 연재되며 재등장한 충암연구보고서는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저자들의 면면도 세대의 변화를 보였다.

이창호, 유창혁 등의 제1세대 멤버들이 정상으로 발돋움하면서 연구회의 주축은 자연스레 최명훈, 김승준, 윤성현, 윤현석, 김성룡, 양건 등 제2세대로 이어졌고, 현재는 최연소 회원인 원성진 二단에 이르기까지 1, 20대로 구성된 '젊은 피'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연구활동도 기존의 전체 토론회 방식은 물론 조별 주제연구 및 세미나가 이루어지는 등 보다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다.

「충암대연구」는 이처럼 충암연구회 '10년공부'의 결정판이요 엑기스인 만큼 한국바둑계의 귀중한 유산이라 아니할 수 없다. 현재 3권까지 출간돼 있으며 곧 4권이 선보일 예정. 충암연구회의 공동연구결과를 김성룡 六단이 아마추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하게 정리했다.

「충암대연구」1, 2권은 과거 바둑서당에서 출간됐던 「충암연구보고서」1, 2권의 수정, 보완판이다. 출간 된 지 꽤 시간이 흐른만큼 아무래도 최근 이론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 시류의 변화에 맞도록 고친 부분이 많으며 특히 2권은 거의 새롭게 쓰이다시피 했다는 평. 3권부터는 100% 새로운 내용으로 꾸며졌다.

"「충암대연구」시리즈를 정리, 출간하면서 연구회원들의 지탄(?)을 많이 받았어요. 1권이 독자들에게 좀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어 2권부터는 변화도를 좀더 세세하게 나누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쉽게 상술했는데 회원들은 '전문서로서 지나치게 쉽다'고 항의를 한 것이죠. '이 책은 프로가 아닌 일반독자들을 위한 것이므로 되도록 알기 쉽게 써야 한다.'고 겨우 설득을 하긴 했습니다만."

대표집필을 맡은 김성룡 六단은 아무리 쉽게 썼다고는 하지만 「충암대연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급 이상의 기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특히 프로기사들에게 5, 6점 정도 버틸 수 있는 아마유단자들에게 필독을 권하고 싶다는데.

'「충암대연구」를 읽으면 바둑이 '확' 느는가?'라는 기자의 우문에 김성룡 六단이 웃으며 답한다.

"「충암대연구」는 다른 저서들과 달리 젊고 뛰어난 바둑브레인들이 모여 함께 어깨를 맞대고 연구한 공동 작품입니다. 따라서 '프로들이 과연 어떻게 수읽기를 발상하고 착수하는가'하는 프로 특유의 착점에 관한 메카니즘을 이해할 수 있는 최적서라고 할 수 있지요."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양건 五단같은 기사는 이런 점을 들어 「충암대연구」는 아마 강자들, 특히 입단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조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