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도서 리뷰]-이창호 파일

한국 사회에서 전문적으로 한 분야를 공부해야 할 때 우리의 글과, 우리사람이 쓴 기록으로 학습을 할 수 있는 분야가 얼마나 있을 까? 대학교를 보아도 처음에 개론서는 한글로 시작하지만. 깊이 파고 들수록, 외국어로 된 원서들과 한 없이 씨름해야만 한다. 한국의 과학,기술,문화등이 모두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지만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은 아직 원서와 전쟁중이다. 하지만 적어도 최고를 달리고 있는 바둑에 있어서는 전문가가 되는 과정에 있어서도 다른 나라의 책을 볼 필요가 없다. 한국의 기사들에 관한 내용과 한국인이 쓴 책이 가장 좋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때, 한국 땅에서 전문적으로 바둑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기필코 외국의 바둑책을 탐독해야 했다. 특히 일본에서 나온 바둑책들을. 당시로서는 그러한 일본 책이 가장 내용이 훌륭한 편이었고, 우리쪽에서 나온 책들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고전으로 생각되는 일본의 바둑책들은 사카다의 [묘]시리즈를 비롯해, 우칭위엔전집류와 [명국세해], 일본 본인방가의 기보. 기경중묘, 후지사와 슈코의 [기본수법사전]등등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적어도 4인방이 세계 바둑계를 제패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절대강자 이창호 九단이 최강의 면모를 과시하기 시작하면서 이제 다른나라의 기보연구보다는 우선적으로 한국의 4인방, 그중 이창호 九단의 기보를 특히 분석하고, 4인방의 이름을 앞면에 내세운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다. 그 서적들중에서도 특히 의미가 있는 것은 그들이 실전을 통해 생산한 기보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직접 담아논 책들일 것이다.

[이창호 파일]은 이창호 九단이 국내의 거의 모든 타이틀을 독식하던 때인 97년과 98년도에 월간바둑에 이창호와의 대화형식으로써 연재되던 기보 상보들이다. 지금은 조금 시들해 지긴 했지만, 당시의 유행어중 하나가 "창호에게 물어봐"라는 말로써 뭔가 어려운 바둑 수나 신수(新手)가 나오면 검토를 하던 기사들이 이 수는 어떨까 하는 질문에 하던 우스개로 하던 소리였다. 심지어 스승인 조훈현 九단도 동료기사나 관전기자들의 질문에 심심치 않게 "창호에게 물어봐"라는 농담을 하곤 했다. 그래서 프로기사 문용직 四단같은 경우는 모두가 그렇게 물어보면 그럼 "창호는 누구에게 물어보나?" 라고 제법 심각하게 반문을 하곤 했다.

과연 이 수는 왜 둔 것일까? 일반 아마추어는 프로들의 수를 보면서 항상 이러한 의문을 지닌다. 둔 사람에게 속 시원히 물어보고 싶다. 프로도 가끔씩은 그러한 의문이 드나보다. "창호에게 물어봐"라는 말은 실제로 속시원히 물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말이 생겨났을 수도 있다. (물론 이창호 九단이 최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창호에게 물어보면 어떤 답변이 나올까?

[이창호 파일]은 직접 이창호 九단에게 물어보며 서술한 책이다. 이창호 九단과 1년여 넘게 기보에 관해 "창호에게 물어본" 행운의 저자는 중앙일보 바둑전문위원인 '박치문'씨. 이창호 九단에게 묻는 직접적인 질문과 더불어 각 기보는 대국의 하이라이트를 소개하고 판의 특징을 잡을 수 있는 제목을 달아 재미와 더불은 감흥을 주었다. 이 부분은 이창호 九단이라는 실력자와 더불어 책을 구성한 박치문씨의 탁월한 솜씨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두사람의 이름이라면 한 번 믿어봐도 되지 않을까?

바둑에 상당한 조예가 있으신 당신. 정말 이창호 九단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 직접 물을 기회는 없겠지만. 간접적으로 각 수에 대한 자세한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 바로 [이창호 파일]이다. 오늘 밤에라도 이창호 九단의 실전 강의를 들으며 그의 기보를 음미하며 한수,한수 바둑판에 놓아 볼 수 있기를..

-이창호 파일 서론(박치문)

바둑을 좋아하는 나 자신은 이 九단과 더불어 바둑수를 논하던 시간이 즐거웠다. 성실한 이창호 九단답게 최고의 수읽기를 동원했고 미세하고 미묘한 승부의 순간들을 정확하게 추적하고 있다. 필자는 이 九단의 승부호흡과 안목을 해치지 않기위해 관전기적인 첨언이나 주관적인 해석은 가능한한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