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꾼들 사이에 입소문 난 ‘곤드레쌈밥집’

며칠 전 오후, 책상 위의 휴대전화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발신자는 ‘손본’. 사이버오로의 손종수 이사(처음 인사를 나눌 때의 직책이 본부장이어서 나는 지금도 ‘손본’이라고 부른다)였다.

‘한잔 하자는 전화겠지’ 하는 마음에 얼른 폴더를 열었다. 그러나 손 본부장은 대뜸 맛집 한 곳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중국에서 영호가 왔는데 맛있는 저녁을 사고 싶다”면서….

“영호요? 이 국수(이창호 九단) 동생 이영호요?”

그렇다고 했다. 아무 망설임 없이 “그러면 내가 한 턱 쏘겠다”고 말했다. 중국으로 출장을 갈 때면 늘 신세를 졌는데, 한국에서 그 고마움을 조금이라도 갚을 요량이었다. 마침 찜해 놓은 맛집도 있어 잘됐다 싶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용산구 보광동의 ‘곤드레쌈밥집’(02-792-2986)이다. 이 난을 처음 장식한 양건 八단과 오로미디어의 허기철 기자도 자리를 함께 했다. 반가운 얼굴들이 오랜만에 한데 모인 이날 술자리는 아주 깊은 밤까지 이어졌다.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행복한 맛

이태원 해밀턴호텔에서 보광동길로 20여 분 걷다 보면 보광동 종점 부근에서 찾을 수 있는 ‘곤드레쌈밥집’은 이미 ‘맛꾼’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곳이다. 이 집의 대표 먹거리는 간판 그대로 곤드레쌈밥이다. 강원도 태백산 고지에서 자라는 곤드레나물을 넣고 지은 돌솥밥에 대패삼겹살과 갖가지 쌈이 어우러지는 곤드레쌈밥은 눈과 입은 물론 코와 귀까지 행복하게 만든다.

우선 푸짐한 상차림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일단 4가지 나물을 비롯한 12가지 밑반찬과 함께 수북한 대패삼겹살이 상에 오른다. 여기에 겨자, 적근대, 당귀, 알배추, 다시마, 치커리 등 10여 가지 쌈들이 기다란 ‘나무쟁반’에 그득히 담겨 나온다.




대패삼겹살이 자글자글 익는 소리에 귀가 즐거울 즈음 향긋한 내음과 쌉싸래하면서도 달큰한 맛으로 코와 입을 기쁘게 해주는 곤드레돌솥밥이 상에 오른다. 곤드레돌솥밥뿐 아니라 영양돌솥밥, 날치알돌솥밥 등 여러 가지 돌솥밥으로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이 집의 맛 비결은 ‘비빔장 3종 세트’에 있다. 볶은 강된장, 양념 갈치속젓, 양념간장이 바로 그것.

돌솥밥을 양푼에 던 후 자기 입맛에 맞춰 양념장을 넣고 쓱쓱 비벼 한 숟가락 베어 물면 입 안 가득 고향의 맛이 배어든다. 조금씩 나눠 3가지 양념장으로 고루 비벼 먹는 맛도 색다르다. 밥을 양푼에 덜고 남은 돌솥에 물을 부어 나중에 먹는 눌은밥도 또 다른 맛의 기쁨이다.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어 이리저리 손을 놀려야 하는 까닭에 저절로 손목운동이 될 정도로 이 집의 먹거리는 풍성하다. 더욱이 손끝으로 싱싱함이 느껴지는 쌈들은 손까지 기분 좋게 만든다. 그야말로 오감만족이다.

여기에 곤드레는 탄수화물, 단백질, 칼슘, 비타민A 등이 많아 성인병 예방에 좋기로 소문난 나물이다. 특히 한방에서는 지혈·소염·이뇨작용·해열의 약재로 쓰이고, 민간에서는 부인병 치료약으로 이용돼 왔다. 오감의 행복함을 누리는 것은 물론 건강도 챙기는 먹거리인 셈이다.

넉넉한 인심에 살뜰한 정성

이 집이 ‘진정한 맛집’으로 대접받아야 하는 까닭은 주인장(송재숙·48)의 넉넉한 인심과 살뜰한 정성에 있다.주인장은 자연산인 나물은 둘째 치고 상에 오르는 채소들도 유기농 채소만을 고집한다. 자신과 가족이 함께 먹는 음식인 만큼 조금이라도 좋은 것을 쓰려고 매일 발품을 판다. 곤드레나물은 정선에 사는 주인장의 동생이 직접 채취한 것이다.




반찬 하나하나도 주방장을 겸한 주인장이 직접 만든다. 주부의 자존심과 엄마의 마음을 담아서. 그러다 보니 인공조미료 따위는 일절 넣지 않는다. 천연의 재료로 자연의 맛, 고향의 맛을 살려내는 것.

인심 좋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 한번 밥상에 오른 음식은 다시 내놓을 수 없기에 처음엔 적당량을 올리지만, 손님이 남기지 않는다면 귀한 나물 등의 반찬을 끝없이 대접한다. 또 고기를 4인분 이상 먹을 경우 소주 1병을 서비스하고, 점심식사 때는 1000원을 할인해 준다. 큰돈은 아니지만 손님들로서는 자신이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는 기분을 얻을 수 있다.

무엇을 먹을까? 행복한 고민!

이 집 간판이 ‘곤드레쌈밥’이지만 그것 하나만으로 맛집의 대열에 합류한 것은 아니다. 제육쌈밥(7000원)과 버섯불고기야채쌈밥(1만원)도 미식가들의 발길을 이끌기에 충분하다.

대관령에서 말린 황태가 입맛을 한껏 돋우는 황태구이(7000원), 여러 한약재를 넣어 만든 소스에 적셨다가 불판에 올리는 대패삼겹살(9000원)도 인기 메뉴다. 돼지양념갈비(9000원) 역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즐겨 먹는 맛거리다. 또 돌게로 만든 간장게장(7000원)은 짭조롬하면서도 깊은 맛으로, 자신이 왜 밥도둑으로 불리는지를 몸소(?) 보여준다.




특히 생굴, 생굴무침, 굴전, 굴돌솥밥이 어우러지는 굴정식(1만3000원)은 곤드레쌈밥과 함께 이 집이 자랑하는 ‘대표선수’다. 건강에 좋다는 굴을 다양한 요리로 즐길 수 있어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

[글 : 엄민용]

○●...우리말 대마왕, 엄민용

'건방진 우리말 달인'을 자처하며 같은 이름의 책을 썼고 성공했다. 어려서는 교열기자로서 여러 일간지에서 '진'하게 일했다. 그는 글에 대한 자존심이 높던 취재기자들의 기사에 빨간 줄을 마구 그어대 심하게 다툰 적이 많았다. 어려서부터 그는 그런 다툼에서 지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에 자존심 높던 기자들이 대부분 얼어 붙었다. "네가 쓴 글이 틀렸다니까. 어법도 안맞고 표준어도 아니야."

현재 스포츠칸에서 바둑을 담당하고 있고, 일간지 교열기자와 아나운서들의 모임인 '한국어문교열기자협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그는 바둑담당 기자들 사이에선 '엄라덴'이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실제 나이보다 훨씬 들어보이는 외모를 활용할 줄 안다.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 잘 벗겨진 이마. 꺾어 신은 운동화에 후줄근한 와이셔츠. 단정치 못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를 위엄(?)있게 만드는 장치다.

엄민용은 기자다. 그리고 우리말 대마왕이다.

'맛의 발견'은 월간바둑에 2009년부터 연재된 '음식탐방기'다. 프로기사, 바둑애호가들과 함께 '맛집'을 순례해 인기를 끌고 있다. 잡지에 연재될 때, 흑백사진이 나와 아쉬움이 많았는데 총천연색으로 웹에서 보는 맛은 전혀 다를 것이다. 지난 연재를 사이버오로,파란바둑,야후바둑을 통해 주1회, 혹은 격주1회로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