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만 해도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던 ‘회’가 양식업의 발달로 흔한 먹을거리가 됐다. 한 접시에 1만원대 아래로 팔릴 정도다. 광어나 우럭으로 대표되던 횟감도 무척 다양해졌다. 특히 자연산에 대한 믿음 속에 ‘막회’가 대유행이다.

사무실 등이 밀집해 ‘먹자촌’이 형성된 곳에는 한 골목에 서너 집씩 있다. 이들 집은 신선한 횟감을 저렴한 가격에 내놓아 늘 사람들로 붐빈다.

그러나 ‘그 집이 그 집이고, 그 맛이 그 맛’인 것이 흠이다. 뭔가 특별함을 찾는 데는 2% 부족하다.

하지만 두드리면 열리고 찾으면 보이는 것이 세상 속 ‘맛집’이다. 다른 집에서 부족한 2%를 꽉 채우고도 10% 이상 기분이 업그레이드되는 집이 얼마든지 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죽변미주구리막회’(02-3142-2205)도 그런 집 가운데 한 곳이다. 이곳을 김만수 7단과 함께 찾았다. 이 자리에는 바둑을 무척 좋아하는 아마추어 바둑팬 가족도 함께했다.


▲백고둥

고래 수육과 육회에 군침이 꿀꺽

2호선 합정역 3·4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한 이 집을 아주 특별한 곳으로 만드는 ‘대표 먹을거리’는 고래고기다. 이 집은 포항 죽도시장의 ‘할매고래집’에서 그날그날 올라오는 고래고기를 수육과 육회로 내놓는다.

이중 수육은 고래 특유의 진한 향이 있어 처음 먹는 사람에게는 조금 부담스럽다. ‘삭힌 홍어’를 처음 먹을 때의 기분과 비슷하다. 톡 쏘는 맛은 없지만, 느끼하면서도 퀴퀴한 고래고기 특유의 향이 입과 코를 거북하게 만든다.

하지만 홍어가 그러하듯, 고래고기도 일단 입맛을 들이면 그 향에 취한다. 특히 입에 쫄깃하게 감치는 맛은 다른 고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색다른 맛이다. 처음 먹는 사람도 조금씩 김치에 싸서 먹다 보면 금방 익숙해진다.


▲참소라

반면 육회는 향이 거의 없고, 육질은 소고기보다 더 쫀득해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맛에 취해, 호기심에 이끌려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육회는 포항에서 고래가 잡힌 이튿날에만 맛볼 수 있다. 싱싱한 횟감이 올라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집의 주인이자 주방장 윤용남씨는 “고래고기는 수육으로 먹어야 참맛을 알 수 있다”고 귀띔한다. 그러면서 육회용으로 쓰이는 배밑살은 원래 질이 조금 떨어지는 부위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인지 이 집은 육회(3만원)보다 수육(4만원)이 비싸다.

이 집은 고래고기 중에서도 질이 떨어지는 곱새기(돌고래)는 취급하지 않는다. 최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품에 속하는 청고래를 쓴다.


▲고래육회와 군소, 그리고 밑반찬들

싼값에 동해 특산물 한껏 먹어

이 집은 음식을 시키면 밑반찬이 거의 없다. 집에서도 먹을 수 있는 반찬들을 뭣 때문에 돈 주고 사서 먹느냐는 것이 이 집 주인장의 지론이다. 싼 값에 동해의 신선한 해산물을 양껏 먹으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먹을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군소’다. 이름도 생소한 ‘군소’는 바다에 사는 민달팽이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생김새는 마치 바닷속 괴물 같지만, 미역·다시마 등 사람들 몸에 좋다는 해초만 먹고 사는 놈으로, 동해 쪽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건강식으로 꼽혀 왔다.

군소는 참기름에 살짝 찍어 먹으면 고소한 맛이 그만이고, 초장에 찍어 먹으면 새콤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입 안을 감싼다. 서울에서는 거의 맛볼 수 없는 귀한 것인데도 주인장은 2만원짜리 한 접시에 7~8마리를 썰어내 준다.

이 밖에 눈을 감고 먹으면 전복과 구분할 수 없는 맛의 참소라(2만원), 씹히는 맛이 좋은 미주구리(물가자미·2만원)와 이것을 기본으로 한 모둠막회(2만원), 김치와 어우러진 국물맛이 끝내주는 곰칫국(1인분 7000원), 대접으로 한 가득 나오는 물회(6000원) 등도 이 집이 자랑하는 ‘맛거리’다.


▲군소

예약은 필수, 미리미리 서둘러야

이 집의 유일한 흠은 아무 때나 갔다가는 헛걸음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낮에는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저녁에는 오후 5시에서 10시까지만 영업을 한다.

손님은 오후 9시가 넘어가면 받지 않는다. 그날 올라오는 싱싱한 먹을거리를 상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주인장의 조금 ‘건방진’ 변명이다. 빨간 글씨의 날에는 아예 가게 문을 닫는다.

낮과 밤 언제든 사람들로 붐비는 이 집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 위해서는 예약이 필수다.


▲막회



김만수 七단은 현재 필자가 근무하는 <스포츠칸>에 비씨카드배 관전기를 쓰고 있다. 이 때문에 하루에 한 번씩 그의 글을 읽는데, 그때마다 깜짝 놀라곤 한다. 글 솜씨가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기사가 아니라 전문 작가로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문장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매일 소재를 달리하는, 바둑이나 생활 속의 얘기는 그의 해박한 지식을 엿보게 한다. 다양한 경험과 폭넓은 대인관계, 엄청난 독서량이 가져온 결과다. 그와 술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참 많은 것을 새로 알게 된다. 그 때문에 그와 함께하는 자리는 늘 유쾌하다.

그런 그가 최근 일을 냈다. 비씨카드배 64강전에서 중국랭킹 3위의 강자 류싱 七단을 보기 좋게 꺾은 것. 특히 이날 바둑은 승부사로서 매서운 손바람을 일으키던 옛 모습을 보여주는 일전이었다. 이 때문에 그의 예전 활약상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큰 축하를 받았다.

그 역시 “승부에 몰두하던 시절에 느끼던 ‘좋은 바둑의 흐름’이 짜릿하게 되살아난 일전이었다”며 “승리를 거둬 기분이 좋았지만, 주변의 축하를 받는 일이 더 즐거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예전의 승부감각을 되찾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바둑공부에만 매달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그러지 못한다”며 “바둑보급과 지도에 힘쓰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또 김七단은 현행 랭킹제도와 관련해 “상위 10위권의 기사들에게 부담이 큰 시스템”이라며, “현재의 제도에다 상금누계액을 점수화해 결합하는 방식 등으로 좀 더 합리화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런 작업은 기사회나 한국기원 전체의 뜻으로 이뤄져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한편 김七단 최근 아들을 낳아 아버지 대열에 합류했다. 그의 득남을 축하한다

[글 : 엄민용]




○●...우리말 대마왕, 엄민용

'건방진 우리말 달인'을 자처하며 같은 이름의 책을 썼고 성공했다. 어려서는 교열기자로서 여러 일간지에서 '진'하게 일했다. 그는 글에 대한 자존심이 높던 취재기자들의 기사에 빨간 줄을 마구 그어대 심하게 다툰 적이 많았다. 어려서부터 그는 그런 다툼에서 지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에 자존심 높던 기자들이 대부분 얼어 붙었다. "네가 쓴 글이 틀렸다니까. 어법도 안맞고 표준어도 아니야."

현재 스포츠칸에서 바둑을 담당하고 있고, 일간지 교열기자와 아나운서들의 모임인 '한국어문교열기자협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그는 바둑담당 기자들 사이에선 '엄라덴'이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실제 나이보다 훨씬 들어보이는 외모를 활용할 줄 안다.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 잘 벗겨진 이마. 꺾어 신은 운동화에 후줄근한 와이셔츠. 단정치 못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를 위엄(?)있게 만드는 장치다.

엄민용은 기자다. 그리고 우리말 대마왕이다.

'맛의 발견'은 월간바둑에 2009년부터 연재된 '음식탐방기'다. 프로기사, 바둑애호가들과 함께 '맛집'을 순례해 인기를 끌고 있다. 잡지에 연재될 때, 흑백사진이 나와 아쉬움이 많았는데 총천연색으로 웹에서 보는 맛은 전혀 다를 것이다. 지난 연재를 사이버오로,파란바둑,야후바둑을 통해 주1회, 혹은 격주1회로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