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 유성연수원에는 세 종류의 숙소가 있다. 주로 선수단이 이용하는 호텔동과 관계자들이 사용하는 콘도동, 그리고 주로 연수를 목적으로 찾은 이들이 묵고 있는 연수동. 선수단-각 국 선수와 단장-은 시설이 가장 좋은 호텔동에서 1인실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선수단 일원 중에 꼭 콘도동으로 숙소를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달라고 대회관계자에게 청탁(?)을 하는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중국 선수단을 이끌고 방한한 로지엔원(羅建文) 중국선수단 단장이다.



보통 콘도미니엄보다는 호텔이 편리하고 숙박비 또한 비싸기 마련인데 콘도동을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 하나, 취사가 가능하다는 것 때문이다.

삼성화재 유성연수원은 식사시간이 정해져 있다. 아침식사 시간은 7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점심식사 시간은 12시부터 1시까지, 그리고 저녁식사 시간은 오후 6시부터 7시까지인데 문제가 되는 것은 저녁을 먹고 난 후이다.

20대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은-연수원측에서 신경을 쓴다고는 하지만 한식위주의 식단을 짜다보니 양껏 먹는다고는 하지만 자국음식만은 못할것이다-밤 10시쯤 되면 허기를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근처에는 음식점도 변변치 않아 허기를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이점을 느낀 로지엔원 단장은 그 다음 삼성화재 유성연수원에 올 때마다 기본재료를 중국에서 가지고 온다. 그리곤 오자마자 근처의 대형마트를 찾아 밀가루나 생선, 고기, 야채 등을 사 놓는다.

별다른 일정이 없는 날 밤 9시가 되면 로지엔원 단장의 방 앞에서는 또닥또닥 거리는 도마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제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준결승 2국을 앞두고 있던 밤, 콘도동 116호에서는 고소한 기름냄새와 함께 간간한 웃음이 문틈으로 새어 나오고 있다. 생선과 야채볶음, 계란 등가벼운 요깃거리를 앞에 두고 단장과 선수단이 식탁에 앉아 있다.



중요한 대국을 앞두고 긴장하고 있는 선수들에게 가벼운 맥주와 간단한 음식은 단지 배고픔을 면하기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경직상태로 온 밤을 지새우기보다는 모든 것을 잊고 잠깐이나마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로지위엔 단장의 따뜻한 배려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