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대학원생 강나연씨가 제8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직접 다녀와서 작성한 글입니다.


강나연 아마6단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대학원 재학중.
바둑TV, 스카이바둑 진행
2002년 롯데햄우유배 아마여류최강전 최강부 우승
2002년 여성연맹회장배 최강부 우승
2003년 삼성카드배 전국여류아마바둑최고위전 최강부 우승
2003년 협회장배 전국아마바둑대회 여성최강부 우승


제8회 전주국제영화제 '기성 오청원(The Go Master)' 상영

부산국제영화제와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영화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올해로 여덟 번째를 맞는 전주국제영화제는 “동화(動畫):시선을 물들이다”라는 컨셉으로 4.26(목)~5.4(금)까지 9일 동안, 37개국 185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그중 현대 바둑의 전설 오청원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기성 오청원'이라는 작품이 상영되어 눈길을 끌었다. 바둑인의 한사람으로서 국제 영화제에 바둑인을 주제로 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상영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전주로 발걸음을 향했다.

상영관 안으로 들어서자 영화를 보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총 관객은 150명 정도. 연령층은 젊은 친구들부터 장년층까지 다양했고 간혹 외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영화 시작전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작품들 중에 이 영화를 택하게 된 동기를 물어보니 다양한 대답이 돌아왔다. 일대기영화를 좋아해서, 감독이 좋아서, 주인공 배우가 좋아서, 다른 사람의 추천으로, 영화 소개글이 마음에 들어서 등등. 놀라운 것은 인터뷰를 했던 사람들 모두가 바둑은 전혀 둘 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이 영화는 중국의 티엔 주앙주앙이 감독을 맡고 오청원 역에는 <와호장룡>, <해피투게더> 등으로 잘 알려진 대만 배우 장첸이, 그의 아내 역에는 일본의 이토 아유미가 캐스팅되어 촬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오청원의 인생을 그린 전기영화

영화는 현재의 오청원(吳淸源) 선생에서 청년 오청원의 모습으로 전환 되면서 시작한다. 일대기 영화지만 내용은 주로 1930년대~50년대를 다루고 있었다. 이 시기는 태평양전쟁, 2차 세계대전, 일본의 전후 부흥과 중국 사회주의 확립으로 동아시아 지역이 매우 격동적이었던 시기다. 이 시대 사람이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오청원 선생 또한 보통 사람들이 경험하기 힘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영화에서 그리는 인간 오청원의 주제는 진리탐구이다. 그리고 그 수단으로 종교와 바둑이 등장한다. 이 두가지가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갈등을 빚어내며 그의 삶을 이끌어 간다. 사실 오청원 선생이 신앙을 갖게 된 종교는 사람들이 흔히 일컫는 사이비 종교였다. 하지만 자막으로 보여주는 선생의 회고록에서는 "대혼란의 시대에 나에게는 신앙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패배하지 않았다."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대혼란의 시대, 역사의 격동적 시대에 한 개인이 시대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오청원의 인생은 성공한 삶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격동의 시대에 패배하지 않고 소신을 지키며 승리하고자 하는 그의 집념이 영화 곳곳에 베어 있었다.

반면 바둑에 대한 부분은 다소 미흡하게 그려진 점이 아쉽게 느껴졌다. 오청원의 바둑 스승인 세고에(瀨越憲作), 수많은 대국을 펼치고 신포석을 함께 연구한 기타니(木谷實), 마지막으로 본인방 십번기를 벌인 다카가와(高川格) 등이 등장하지만 바둑의 대결에 대한 부분은 거의 생략되고 인물에만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의 반응도 바둑의 짜릿한 대결과 승부를 기대했었는데 그런 부분이 별로 없어서 아쉬웠다는 의견이 많았다.

주인공의 연기력은 대체로 무난했으며 절제된 연기가 돋보였다. 조금 트집을 잡자면 바둑돌을 판에 올려놓는 손놀림의 연기에서 어색한 부분이 있었다. 수없이 연습을 했다고 들었지만 역시 연습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사실 이런 류의 전기영화는 출연배우들의 연기력이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배우의 캐스팅에 있어서도 닮은 사람을 찾는 데에 주력한 듯 보였고 실제로 배우가 등장하면 어떤 인물의 역을 맡았는지 대강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런 면에서 연기력보다 역사적 인물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데는 상당히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겠다.

대중과 함께할 수 있는 바둑영화를 기대해보며

이번 영화는 전체적으로 오청원이라는 한 인물이 격동의 시대에 신앙과 바둑을 통해 혼란을 극복해내고 그 속에서 고뇌하며 자신과 싸워나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는 바둑팬들이라 할지라도 영화의 줄거리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은 구성이었다.

사실 전기영화는 전기에 비해 성공하기 어렵다는 속설이 있다. 전기에 대해 글로 표현하는 것은 수월하지만 영상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모두 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영화 역시 그러한 속설을 어느 정도 보여주었다. 전기영화의 성공 열쇠는 관객들이 주인공에 대한 사전지식을 얼마나 가지고 있냐 하는 것인데 이 영화는 골수 바둑인을 제외하고 기성 오청원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일반인들에게는 더욱더 낯설게 느껴졌을 것이다. 영화의 속성상 애초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기대하긴 어려웠겠지만 그런 부분에 좀더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영상으로 투사된 삶을 보고 감동을 느끼기에는 인간 오청원의 영웅적인 면을 거의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우리 바둑인들에게는 엄청난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기성 오청원을 너무 소박하게 그리고 있다. 이것이 감독의 겸손인지 영화 기술상의 문제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전기영화의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전체적인 구성에 있어서는 다소 실패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이제껏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가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영화가 발표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의를 가지는 일이다. 다만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영화가 아닌 예술영화에 가까운 작품이라 국내에서 개봉이 될 지 미지수이다. 좋고 나쁨을 떠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영화를 계기로, 앞으로 대중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많은 바둑영화가 탄생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감독: 티엔 주앙주앙 (TIAN Zhuangzhuang)

1952년 중국 베이징 출생. 양친이 모두 배우로, 각기 국영 스튜디오의 소장을 맡고 있는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집안 출신이다. 베이징 영화학교 연출과 졸업 후 주로 중국에서 잘 다루어 지지 않던 소수민족의 이야기를 다뤄 주목을 받는다. 장 이모우, 첸 카이거와 함께 5세대 감독으로 구분되는 티엔은 1993년 해외에서 각광을 받은 <푸른 연>을 제작한 이래 루쉐창, 장밍 등 6세대 감독발굴에 주력해왔다.




▲ 제8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린 전주 경원동 거리

[영화 관련 사진 출처/ 전주 국제 영화제 홈페이지 (바로가기)]